아꾸살라물라 숫따(해로운 뿌리)

Akusalamūlasutta

앙굿따라 니까야 AN 3.69

탐욕·성냄·어리석음이 나쁜 행위의 뿌리이고, 그 반대가 선한 행위의 뿌리라 한다.

인용된 가르침 2구절

이 경을 2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세 가지 독의 상호작용 1구절

욕심·성냄·어리석음이 서로를 강화하는 메커니즘과 그 고리 끊기

수행자들이여, 이러한 사람에게는 욕심에서 생겨난 악하고 해로운 것들이 버려지고, 뿌리가 잘리고, 밑동만 남은 야자수처럼 되어,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성냄에서 생겨난 것들도, 어리석음에서 생겨난 것들도 그러하다.

Evarūpassa, bhikkhave, puggalassa lobhajā pāpakā akusalā dhammā pahīnā ucchinnamūlā tālāvatthukatā anabhāvaṅkatā āyatiṁ anuppādadhammā.

앙굿따라 니까야 AN 3.69 아꾸살라물라 숫따 (해로운 뿌리)

배경

세 독의 이야기가 뿌리 뽑힘으로 마무리됩니다. 부처님은 욕심에서 생겨난 악하고 해로운 것들이 “뿌리가 잘리고 밑동만 남은 야자수처럼 되어, 미래에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성냄과 어리석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밑동만 남은 야자수는 다시 자라지 못합니다. 이 경에서 부처님이 함께 드신 비유는 큰 나무를 휘감아 죽이는 말루와 덩굴입니다. 덩굴을 뿌리째 파내어 없애면 그 나무는 다시는 시달리지 않습니다. 세 독도 그렇게 처리해야 완전히 끝납니다. 그러나 완전히 뽑기 전에도, 잘라낼 때마다 덩굴은 힘을 잃습니다. 매번 욕심을 알아차리고 놓아줄 때마다, 매번 분노를 멈추고 자비를 낼 때마다, 매번 착각에서 깨어날 때마다 조금씩 약해집니다. 완전한 뿌리 뽑기는 먼 이야기일 수 있지만, 조금씩 잘라내는 것은 지금 당장 할 수 있습니다.

묵상

오늘 하루, 세 독 중 하나만 의식해 볼까요? 욕심이 올라올 때 “욕심이 있다”고 알아차리고 잠시 멈춰 보세요. 성냄이 올라올 때는 3초만 멈춰 보세요. 어리석음이 눈을 가릴 때는 “지금 뭘 하고 있지?”라고 자문해 보세요. 한 번의 알아차림이 야자수를 한 번 베어 내는 셈이라면, 오늘은 몇 번이나 베어 볼 수 있을까요?

2 의도가 행위다 1구절

행위의 결과를 결정하는 것은 외적 행동이 아니라 내적 의도

수행자들이여, 세 가지 선한 뿌리가 있다. 어떤 셋인가? 욕심 없음이 선한 뿌리요, 성냄 없음이 선한 뿌리요, 어리석음 없음이 선한 뿌리다. 이와 같이 욕심 없음에서 생기고 욕심 없음을 원인으로 하는 많은 이로운 것들이 생겨난다.

Tīṇimāni, bhikkhave, kusalamūlāni. Katamāni tīṇi? Alobho kusalamūlaṁ, adoso kusalamūlaṁ, amoho kusalamūlaṁ. Itissame alobhajā alobhanidānā alobhasamudayā alobhapaccayā aneke kusalā dhammā sambhava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69 아꾸살라물라 숫따 (해로운 뿌리)

배경

의도가 행위라면, 좋은 의도의 뿌리는 무엇인가? 부처님은 세 가지 선한 뿌리인 욕심 없음(알로바), 성냄 없음(아도사), 어리석음 없음(아모하)을 듭니다. 선한 마음을 욕심·성냄·어리석음이 ‘없음’이라는 말로 가리킨 것이 눈에 띕니다. 선한 마음은 욕심·성냄·어리석음이라는 독을 없애면 저절로 드러납니다. 마음의 본성이 빛난다는 앞의 가르침(AN 1.49)과 같습니다. 먼지를 닦으면 빛이 드러나듯, 세 가지 독을 제거하면 세 가지 선한 뿌리가 드러납니다.

묵상

욕심 없음, 성냄 없음, 어리석음 없음,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충족되는 순간이 있었나요? 그 순간의 마음 상태를 떠올려 보면 무엇이 느껴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