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이러한 사람에게는 욕심에서 생겨난 악하고 해로운 것들이 버려지고, 뿌리가 잘리고, 밑동만 남은 야자수처럼 되어,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성냄에서 생겨난 것들도, 어리석음에서 생겨난 것들도 그러하다.
Evarūpassa, bhikkhave, puggalassa lobhajā pāpakā akusalā dhammā pahīnā ucchinnamūlā tālāvatthukatā anabhāvaṅkatā āyatiṁ anuppādadhammā.
배경
세 독의 이야기가 뿌리 뽑힘으로 마무리됩니다. 부처님은 욕심에서 생겨난 악하고 해로운 것들이 “뿌리가 잘리고 밑동만 남은 야자수처럼 되어, 미래에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성냄과 어리석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밑동만 남은 야자수는 다시 자라지 못합니다. 이 경에서 부처님이 함께 드신 비유는 큰 나무를 휘감아 죽이는 말루와 덩굴입니다. 덩굴을 뿌리째 파내어 없애면 그 나무는 다시는 시달리지 않습니다. 세 독도 그렇게 처리해야 완전히 끝납니다. 그러나 완전히 뽑기 전에도, 잘라낼 때마다 덩굴은 힘을 잃습니다. 매번 욕심을 알아차리고 놓아줄 때마다, 매번 분노를 멈추고 자비를 낼 때마다, 매번 착각에서 깨어날 때마다 조금씩 약해집니다. 완전한 뿌리 뽑기는 먼 이야기일 수 있지만, 조금씩 잘라내는 것은 지금 당장 할 수 있습니다.
묵상
오늘 하루, 세 독 중 하나만 의식해 볼까요? 욕심이 올라올 때 “욕심이 있다”고 알아차리고 잠시 멈춰 보세요. 성냄이 올라올 때는 3초만 멈춰 보세요. 어리석음이 눈을 가릴 때는 “지금 뭘 하고 있지?”라고 자문해 보세요. 한 번의 알아차림이 야자수를 한 번 베어 내는 셈이라면, 오늘은 몇 번이나 베어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