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하라다 숫따

Pahārādasutta

앙굿따라 니까야 AN 8.19

바다가 점점 깊어지듯 가르침도 단계적으로 깊어진다는, 여덟 가지 바다의 비유.

인용된 가르침 2구절

이 경을 2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괴로움은 비관이 아니다 - 괴로움의 진리에 대한 오해 1구절

불교가 염세적이라는 오해를 정면으로 다루는, 첫 번째 진리의 다른 얼굴

빠하라다여, 마치 큰 바다가 오직 한 가지 맛, 짠맛을 지니듯이, 빠하라다여, 이 가르침과 규범도 오직 한 가지 맛, 풀려남의 맛을 지닌다.

Seyyathāpi, pahārāda, mahāsamuddo ekaraso loṇaraso; evamevaṁ kho, pahārāda, ayaṁ dhammavinayo ekaraso, vimuttiraso.

앙굿따라 니까야 AN 8.19 빠하라다 숫따

배경

아수라의 왕 빠하라다에게 부처님이 큰 바다의 여덟 가지 놀라운 성질을 들어 가르침을 펴신 경전입니다. 그중 여섯 번째가 이 대목입니다. 바닷물은 어디를 떠서 맛보아도 짭니다. 그것이 바다를 바다이게 하는 단 하나의 맛입니다. 부처님은 자신의 가르침 전체에 대해 같은 말을 하십니다. 어느 대목을 떠서 맛보아도 나오는 맛은 하나, ‘풀려남의 맛(위뭇띠라사)’입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진리를 읽는 기준이 됩니다. 괴로움에 대한 가르침을 맛보았는데 무거움과 체념이 남는다면, 그것은 아직 바닷물을 제대로 맛본 것이 아닙니다. 제대로 맛본 사람에게 남는 것은 언제나 풀려나는 느낌입니다.

묵상

최근에 읽거나 들은 가르침 하나를 떠올려 볼까요? 그것을 새기고 난 뒤 마음에 남은 뒷맛이 무거움이었나요, 아니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나요? 뒷맛이 무겁다면, 나의 해석을 다시 볼 때가 아닐까요?

2 중독에서 빠져나오려는 자에게 1구절

끊겠다고 마음먹고도 다시 손이 가는 자리에서 읽는 말씀

빠하라다여, 마치 큰 바다가 차츰 기울고 차츰 굽어지고 차츰 깊어질 뿐 갑작스러운 벼랑이 없는 것과 같다. 빠하라다여, 이와 같이 이 가르침과 규범에서도 차츰 배우고 차츰 행하고 차츰 나아갈 뿐, 갑작스럽게 앎을 꿰뚫는 일은 없다.

Seyyathāpi, pahārāda, mahāsamuddo anupubbaninno anupubbapoṇo anupubbapabbhāro, na āyatakeneva papāto; evamevaṁ kho, pahārāda, imasmiṁ dhammavinaye anupubbasikkhā anupubbakiriyā anupubbapaṭipadā, na āyatakeneva aññāpaṭivedho.

앙굿따라 니까야 AN 8.19 빠하라다 숫따

배경

부처님이 아수라의 왕 빠하라다와 나누신 대화입니다. 바닷가에 서면 물은 발목에서 무릎으로, 무릎에서 허리로 아주 천천히 깊어집니다. 어느 지점에서 갑자기 낭떠러지처럼 떨어지는 곳은 없습니다. 부처님은 당신의 가르침도 그와 같다고 하십니다. “차츰 배우고 차츰 행하고 차츰 나아갈 뿐”입니다. 무언가를 끊으려는 사람은 대개 반대 방향으로 결심합니다. 오늘부터 완전히, 단번에,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습니다. 그리고 그 절벽에서 한 번 미끄러지면 처음보다 더 깊은 곳으로 떨어졌다고 느낍니다. 부처님이 그리신 지형에는 절벽이 없습니다. 오늘 한 뼘, 내일 한 뼘 깊어지는 바닥이 있을 뿐입니다.

묵상

“오늘부터 완전히”라는 결심을 몇 번이나 해 보셨나요? 그 결심이 실패했을 때 스스로에게 뭐라고 하셨나요? 절벽 대신 완만한 바닥을 상상해 본다면, 오늘 내디딜 수 있는 한 뼘은 무엇일까요? 오히려 작아야 밟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