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훗날 감각적 욕망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안 뒤에,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를 버리고 감각적 욕망으로 인한 열병을 몰아내어, 갈증이 사라지고 안으로 마음이 고요해져 머무느니라.
So aparena samayena kāmānaṁyeva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ṁ viditvā kāmataṇhaṁ pahāya kāmapariḷāhaṁ paṭivinodetvā vigatapipāso ajjhattaṁ vūpasantacitto viharāmi.
배경
이 여정의 귀결입니다. 세 얼굴을 모두 볼 때 - 달콤함을 인정하고, 위험을 직시하고, 벗어남을 경험할 때 - 갈애는 억지로 끊기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놓입니다. 부처님은 마간디야에게 나병 환자의 비유를 드셨습니다. 온몸이 헐어 벌레에 뜯기는 나병 환자는 숯불 구덩이에 몸을 지지며 시원하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병이 나은 뒤 같은 숯불 구덩이를 보면, 그것은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일 뿐입니다. 불이 변한 것이 아니라 그가 나은 것입니다. 감각적 쾌락도 그러합니다. 부처님은 스스로 "갈증이 사라지고 안으로 마음이 고요해져 머문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방법 - 금지가 아니라 통찰, 억압이 아니라 이해, 포기가 아니라 초월입니다.
묵상
세 얼굴을 동시에 보는 연습을 해보세요. 다음에 강한 쾌락의 충동이 올 때, 세 질문을 던져보세요: 이것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이것의 위험은 무엇인가요? 이것 없이도 즐거울 수 있나요? 세 질문을 정직하게 통과하면, 갈애는 저절로 오그라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