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간디야 경

Māgandiyasutta / 마간디야경

맛지마 니까야 MN 75

쾌락주의자에게 자신의 화려했던 젊음을 들려주며, 감각을 놓아 얻은 더 큰 즐거움을 말한다.

인용된 가르침 2구절

이 경을 2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감각적 쾌락의 세 얼굴 1구절

매력과 위험과 벗어남 - 쾌락에 대한 부처님의 정직한 분석

나는 훗날 감각적 욕망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안 뒤에,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를 버리고 감각적 욕망으로 인한 열병을 몰아내어, 갈증이 사라지고 안으로 마음이 고요해져 머무느니라.

So aparena samayena kāmānaṁyeva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ṁ viditvā kāmataṇhaṁ pahāya kāmapariḷāhaṁ paṭivinodetvā vigatapipāso ajjhattaṁ vūpasantacitto viharāmi.

맛지마 니까야 MN 75 마간디야 경 (Māgandiyasutta)

배경

이 여정의 귀결입니다. 세 얼굴을 모두 볼 때 - 달콤함을 인정하고, 위험을 직시하고, 벗어남을 경험할 때 - 갈애는 억지로 끊기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놓입니다. 부처님은 마간디야에게 나병 환자의 비유를 드셨습니다. 온몸이 헐어 벌레에 뜯기는 나병 환자는 숯불 구덩이에 몸을 지지며 시원하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병이 나은 뒤 같은 숯불 구덩이를 보면, 그것은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일 뿐입니다. 불이 변한 것이 아니라 그가 나은 것입니다. 감각적 쾌락도 그러합니다. 부처님은 스스로 "갈증이 사라지고 안으로 마음이 고요해져 머문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방법 - 금지가 아니라 통찰, 억압이 아니라 이해, 포기가 아니라 초월입니다.

묵상

세 얼굴을 동시에 보는 연습을 해보세요. 다음에 강한 쾌락의 충동이 올 때, 세 질문을 던져보세요: 이것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이것의 위험은 무엇인가요? 이것 없이도 즐거울 수 있나요? 세 질문을 정직하게 통과하면, 갈애는 저절로 오그라듭니다.

2 중독에서 빠져나오려는 자에게 1구절

끊겠다고 마음먹고도 다시 손이 가는 자리에서 읽는 말씀

마간디야여, 마치 온몸에 상처가 헐고 진물이 흐르며 벌레에 파먹히는 나병 환자가, 손톱으로 상처의 아가리를 긁어 대며 숯불 구덩이에 몸을 쬐는 것과 같으니라. 마간디야여, 그 나병 환자가 상처의 아가리를 긁어 대며 숯불 구덩이에 몸을 쬐면 쬘수록, 그 상처의 아가리는 더욱 더러워지고 더욱 악취가 나며 더욱 곪아 가느니라. 그런데도 그에게는 상처의 아가리를 긁는 데서 오는 얼마간의 시원함과 얼마간의 만족이 있느니라. 마간디야여, 이와 같이 중생들은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욕을 여의지 못한 채,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에 파먹히고 감각적 욕망의 열병에 타들어 가면서 감각적 욕망을 거듭 즐기느니라.

Seyyathāpi, māgaṇḍiya, kuṭṭhī puriso arugatto pakkagatto kimīhi khajjamāno nakhehi vaṇamukhāni vippatacchamāno aṅgārakāsuyā kāyaṁ paritāpeti. Yathā yathā kho, māgaṇḍiya, asu kuṭṭhī puriso arugatto pakkagatto kimīhi khajjamāno nakhehi vaṇamukhāni vippatacchamāno aṅgārakāsuyā kāyaṁ paritāpeti tathā tathāssa tāni vaṇamukhāni asucitarāni ceva honti duggandhatarāni ca pūtikatarāni ca, hoti ceva kāci sātamattā assādamattā-yadidaṁ vaṇamukhānaṁ kaṇḍūvanahetu; evameva kho, māgaṇḍiya, sattā kāmesu avītarāgā kāmataṇhāhi khajjamānā kāmapariḷāhena ca pariḍayhamānā kāme paṭisevanti.

맛지마 니까야 MN 75 마간디야 경 (Māgandiyasutta)

배경

부처님이 마간디야라는 유행자에게 드신 비유입니다. 이 비유가 겨누는 곳은 “의지가 약하다”가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상처를 긁는 사람은 자신을 해치려고 긁는 것이 아닙니다. 그 순간 정말로 시원하기 때문에 긁습니다. 부처님은 그 시원함이 가짜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얼마간의 시원함과 얼마간의 만족이 있다”고 분명히 인정하십니다. 문제는 그 시원함이 진짜라는 바로 그 점에 있습니다. 진짜이기 때문에 손이 갑니다. 그리고 긁을수록 상처는 깊어집니다. 경의 뒷부분에서 이 사람은 병이 나은 뒤 오히려 그 불을 견디지 못하게 됩니다 - 예전에 즐거움으로 느꼈던 것이, 감각이 제자리로 돌아오자 고통으로 느껴진 것입니다. 이 비유는 병을 앓는 사람을 낮추어 보려는 말이 아니라, 아픈 자리를 긁을 때의 몸의 경험을 빌려 온 것입니다.

묵상

그것을 할 때 정말로 좋았던 순간이 있었다는 것을, 굳이 부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것이 아무 위로도 주지 않았다면 애초에 붙들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다만 이렇게 나누어 볼 수 있을까요 - 그 순간의 시원함은 얼마나 오래갔나요? 그리고 그 뒤에 남은 시간은 얼마나 길었나요? 두 길이를 나란히 놓아 보면 무엇이 보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