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자빠띠·와루나·이사나의 깃발을 차례로 들고, 네 깃발을 보아도 두려움이 사라질 수도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밝힙니다.
“나의 깃발 끝을 볼 수 없다면 신들의 왕 빠자빠띠의 깃발 끝을 올려다보아라.
그의 깃발 끝을 올려다보면 그대들에게 일어난 두려움이나 떨림이나 소름이 사라질 것이다.”
No ce me dhajaggaṁ ullokeyyātha, atha pajāpatissa devarājassa dhajaggaṁ ullokeyyātha. Pajāpatissa hi vo devarājassa dhajaggaṁ ullokayataṁ yaṁ bhavissati bhayaṁ vā chambhitattaṁ vā lomahaṁso vā, so pahīyissati.
상윳따 니까야 SN 11.3 다작가 숫따 (깃발 꼭대기)
배경
삭까 자신의 깃발을 볼 수 없는 경우에 대비해 두 번째 대상으로 빠자빠띠 신왕의 깃발을 제시합니다. 앞서와 같은 방식으로, 바라볼 대상의 이름만 바뀌고 두려움·떨림·소름이 사라진다는 말은 그대로 되풀이됩니다. 경의 반복은 어느 깃발도 뒤의 비판에서 같은 한계를 지닌다는 것을 차례로 보여 줍니다.
묵상
첫 번째 의지처가 보이지 않을 때 곧바로 다른 외적 표지를 찾는 나의 습관이 있다면, 그것은 마음을 어떻게 돕거나 제한하나요?
“빠자빠띠 신왕의 깃발 끝을 볼 수 없다면 와루나 신왕의 깃발 끝을 올려다보아라.
그의 깃발 끝을 올려다보면 그대들에게 일어난 두려움이나 떨림이나 소름이 사라질 것이다.”
No ce pajāpatissa devarājassa dhajaggaṁ ullokeyyātha, atha varuṇassa devarājassa dhajaggaṁ ullokeyyātha. Varuṇassa hi vo devarājassa dhajaggaṁ ullokayataṁ yaṁ bhavissati bhayaṁ vā chambhitattaṁ vā lomahaṁso vā, so pahīyissati.
상윳따 니까야 SN 11.3 다작가 숫따 (깃발 꼭대기)
배경
세 번째 권고는 앞의 빠자빠띠 깃발이 보이지 않는 조건에서 와루나 신왕의 깃발로 넘어갑니다. 표현과 세 반응은 그대로 유지되어, 대상의 교체만으로 같은 결과를 약속하는 반복임이 분명해집니다. 이처럼 대안이 거듭 나올수록, 믿을 대상의 수가 늘어나는 것과 두려움의 실제 원인이 바뀌는 것이 같은 일인지 의문이 듭니다.
묵상
불안할 때 비슷한 대안을 계속 바꾸어 찾은 경험이 있나요? 대상은 달라졌어도 마음의 조건은 그대로였는지 살펴볼 수 있나요?
“와루나 신왕의 깃발 끝을 볼 수 없다면 이사나 신왕의 깃발 끝을 올려다보아라.
그의 깃발 끝을 올려다보면 그대들에게 일어난 두려움이나 떨림이나 소름이 사라질 것이다.”
No ce varuṇassa devarājassa dhajaggaṁ ullokeyyātha, atha īsānassa devarājassa dhajaggaṁ ullokeyyātha. Īsānassa hi vo devarājassa dhajaggaṁ ullokayataṁ yaṁ bhavissati bhayaṁ vā chambhitattaṁ vā lomahaṁso vā, so pahīyissatī’ti.
상윳따 니까야 SN 11.3 다작가 숫따 (깃발 꼭대기)
배경
삭까가 제시하는 마지막 대안은 와루나의 깃발도 볼 수 없을 때 이사나 신왕의 깃발을 보는 것입니다. 왕의 이름만 바뀌고 조건과 행동, 세 가지 두려움, 사라짐이라는 내용은 앞의 세 번과 똑같이 되풀이됩니다. 그런데 이 약속이 끝난 직후 부처님은 네 깃발 모두의 결과가 확실하지 않다고 밝히십니다.
묵상
여러 선택지가 모두 같은 방식으로 안심을 약속할 때, 이름보다 그 방법이 실제로 작동하는 조건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나요?
“그러나 삭까·빠자빠띠·와루나·이사나 신왕의 깃발 끝을 올려다보아도
그 두려움이나 떨림이나 소름은 사라질 수도 있고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왜 그런가? 수행자들이여, 신들의 왕 삭까는 탐냄·성냄·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겁내고 떨며 놀라 달아나기 때문이다.”
Taṁ kho pana, bhikkhave, sakkassa vā devānamindassa dhajaggaṁ ullokayataṁ, pajāpatissa vā devarājassa dhajaggaṁ ullokayataṁ, varuṇassa vā devarājassa dhajaggaṁ ullokayataṁ, īsānassa vā devarājassa dhajaggaṁ ullokayataṁ yaṁ bhavissati bhayaṁ vā chambhitattaṁ vā lomahaṁso vā, so pahīyethāpi nopi pahīyetha. Taṁ kissa hetu? Sakko hi, bhikkhave, devānamindo avītarāgo avītadoso avītamoho bhīru chambhī utrāsī palāyīti.
상윳따 니까야 SN 11.3 다작가 숫따 (깃발 꼭대기)
배경
네 차례 깃발 권고를 인용한 뒤 부처님은 그 약속을 그대로 승인하지 않고 결과를 “될 수도, 안 될 수도”로 제한합니다. 이유는 대표자인 삭까 자신이 탐냄·성냄·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두려워 달아나는 존재라는 데 있으며, 네 깃발도 한 문장 안에서 같은 평가를 받습니다. 그래서 의지하는 대상이 스스로 두려움에서 자유로운지부터 살펴야 하며, 이는 이어지는 부처님·가르침·수행자 공동체를 기억하는 수행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안정을 구하며 의지하는 대상이나 사람은 자신이 약속하는 태도를 실제로 갖추고 있나요? 판단보다 사실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