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숫따(쐐기)

Āṇisutta

상윳따 니까야 SN 20.7

인용된 가르침 4구절

이 경을 2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쐐기만 남은 북 2구절

다사라 사람들의 북이 고쳐지는 사이 원래 모습을 잃어 간 비유입니다.

사왓티에 계실 때의 일이다. 수행자들이여, 옛날에 다사라 사람들에게 아나까라는 북이 있었다. 그 북이 갈라질 때마다 다사라 사람들은 다른 쐐기를 박아 넣었다. 수행자들이여, 마침내 아나까 북의 낡은 나무통이 사라지고 쐐기더미만 남는 때가 왔다.

Sāvatthiyaṁ viharati. “Bhūtapubbaṁ, bhikkhave, dasārahānaṁ ānako nāma mudiṅgo ahosi. Tassa dasārahā ānake ghaṭite aññaṁ āṇiṁ odahiṁsu. Ahu kho so, bhikkhave, samayo yaṁ ānakassa mudiṅgassa porāṇaṁ pokkharaphalakaṁ antaradhāyi. Āṇisaṅghāṭova avasissi.

상윳따 니까야 SN 20.7 아니 숫따 (쐐기)

배경

이 경은 상윳따 니까야 20권(비유 품)에서 바른 가르침이 사라지는 방식을 다루는 첫머리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사라 사람들이 쓰던 아나까라는 북을 예로 드십니다. 북이 갈라질 때마다 사람들은 원래의 가죽판과 나무통을 고치는 대신 쐐기를 덧대었고, 그 일이 되풀이되자 결국 처음의 나무통은 통째로 사라지고 쐐기를 이어 붙인 덩어리만 남았습니다. 이 장면은 뒤에 이어질 비유, 즉 깊은 경들이 조금씩 다른 말로 덧대어지다가 원래 뜻을 잃어 가는 과정을 미리 보여 주는 도입부입니다.

묵상

오래 전해 오는 말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며 조금씩 다른 말로 덧대어지곤 해요. 지금 내가 믿고 있는 말 중에도, 원래는 다른 뜻이었는데 여러 번 전해지며 살짝 바뀐 것이 있을까요? 확신이 서지 않으면 원래 출처를 한번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어요.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오는 세월에 수행자들이 있어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께서 펴신 깊고 뜻이 깊고 세간을 넘어서고 공함을 다루는 경들을 외울 때 듣고자 하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고 앎을 위해 마음을 두지 않으며 그 가르침들을 배우고 지닐 만하다 여기지도 않으리라.

Evameva kho, bhikkhave, bhavissanti bhikkhū anāgatamaddhānaṁ, ye te suttantā tathāgatabhāsitā gambhīrā gambhīratthā lokuttarā suññatappaṭisaṁyuttā, tesu bhaññamānesu na sussūsissanti na sotaṁ odahissanti na aññā cittaṁ upaṭṭhāpessanti na ca te dhamme uggahetabbaṁ pariyāpuṇitabbaṁ maññissanti.

상윳따 니까야 SN 20.7 아니 숫따 (쐐기)

배경

앞서 든 북의 비유를 부처님께서 직접 풀이하시는 대목입니다. 미래에 어떤 수행자들은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가 펴신 경들, 즉 뜻이 깊고 세간의 통념을 넘어서며 공함을 다루는 가르침이 낭송될 때 귀 기울이지 않고 마음을 두지 않으며 배워 지닐 만하다고도 여기지 않게 되리라고 하십니다. 이는 듣는 태도부터 이해하려는 노력, 배울 가치를 인정하는 마음까지 단계별로 전부 놓아 버리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묵상

듣기 편한 말과 마음에 새겨야 할 말이 다를 때가 있어요. 요즘 나는 어떤 이야기에 더 쉽게 귀 기울이고, 어떤 이야기는 나도 모르게 흘려듣고 있나요?

2 듣기 좋은 말과 새겨야 할 말 2구절

화려한 말은 반기고 깊은 가르침은 멀리하게 되는 마음의 방향을 짚습니다.

그러나 시인이 짓고 시로 이루어지고 화려한 문구와 화려한 표현을 지닌 외도나 제자들이 말한 경들을 외울 때는 듣고자 하고 귀 기울이고 앎을 위해 마음을 두며 그 가르침들을 배우고 지닐 만하다 여기리라.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께서 펴신 깊고 뜻이 깊고 세간을 넘어서고 공함을 다루는 경들이 사라지게 되리라.

Ye pana te suttantā kavikatā kāveyyā cittakkharā cittabyañjanā bāhirakā sāvakabhāsitā, tesu bhaññamānesu sussūsissanti, sotaṁ odahissanti, aññā cittaṁ upaṭṭhāpessanti, te ca dhamme uggahetabbaṁ pariyāpuṇitabbaṁ maññissanti. Evametesaṁ, bhikkhave, suttantānaṁ tathāgatabhāsitānaṁ gambhīrānaṁ gambhīratthānaṁ lokuttarānaṁ suññatappaṭisaṁyuttānaṁ antaradhānaṁ bhavissati.

상윳따 니까야 SN 20.7 아니 숫따 (쐐기)

배경

앞서 보인 부정적 태도와 정확히 짝을 이루는 자리입니다. 같은 수행자들이 시인이 짓고 화려한 말솜씨로 꾸며진, 부처님이 아니라 외도나 제자들이 지은 글을 낭송할 때는 오히려 열심히 듣고 배우려 한다고 말합니다. 이 대조 뒤에 ‘이렇게 하여 깨달음에 이른 이가 펴신 깊은 경들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결론이 따라옵니다. 원인은 무엇을 배울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지, 그 마음의 방향이 바뀌는 데 있다는 것을 밝히는 대목입니다.

묵상

듣기 좋고 화려한 말이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런 말만 찾다 보면 정작 곱씹어야 할 말을 지나치게 될 수 있어요. 최근에 오래 곱씹어 본 말과, 그냥 듣기 좋아서 흘려보낸 말을 하나씩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깨달음에 이른 이께서 펴신 깊고 뜻이 깊고 세간을 넘어서고 공함을 다루는 경들을 외울 때, 우리는 듣고자 하고 귀 기울이고 앎을 위해 마음을 두며, 그 가르침들을 배우고 지닐 만하다 여기리라’라고.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이는 일곱 번째로 펴진 경이다.

Tasmātiha, bhikkhave, evaṁ sikkhitabbaṁ: ‘ye te suttantā tathāgatabhāsitā gambhīrā gambhīratthā lokuttarā suññatappaṭisaṁyuttā, tesu bhaññamānesu sussūsissāma, sotaṁ odahissāma, aññā cittaṁ upaṭṭhāpessāma, te ca dhamme uggahetabbaṁ pariyāpuṇitabbaṁ maññissāmā’ti. Evañhi vo, bhikkhave, sikkhitabban”ti.

상윳따 니까야 SN 20.7 아니 숫따 (쐐기)

배경

경의 마무리로, 부처님께서는 수행자들에게 규범을 제시하십니다. 앞서 경고하듯 나열했던 네 가지 태도를 ‘우리는 그렇게 하겠다’는 다짐의 문장으로 그대로 뒤집어 반복하게 하십니다. 끝의 ‘일곱 번째’는 이 경이 속한 비유 품에서 몇 번째로 펴진 경인지를 적어 둔 표시입니다.

묵상

이 경은 하지 말아야 할 태도를 먼저 경고한 뒤, 다짐의 말로 다시 들려줘요. 나에게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말이 있다면,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마음에 붙들어 두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