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시인이 짓고 시로 이루어지고
화려한 문구와 화려한 표현을 지닌
외도나 제자들이 말한 경들을 외울 때는
듣고자 하고 귀 기울이고 앎을 위해 마음을 두며
그 가르침들을 배우고 지닐 만하다 여기리라.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께서 펴신
깊고 뜻이 깊고 세간을 넘어서고 공함을 다루는 경들이
사라지게 되리라.
Ye pana te suttantā kavikatā kāveyyā cittakkharā cittabyañjanā bāhirakā sāvakabhāsitā, tesu bhaññamānesu sussūsissanti, sotaṁ odahissanti, aññā cittaṁ upaṭṭhāpessanti, te ca dhamme uggahetabbaṁ pariyāpuṇitabbaṁ maññissanti. Evametesaṁ, bhikkhave, suttantānaṁ tathāgatabhāsitānaṁ gambhīrānaṁ gambhīratthānaṁ lokuttarānaṁ suññatappaṭisaṁyuttānaṁ antaradhānaṁ bhavissati.
상윳따 니까야 SN 20.7 아니 숫따 (쐐기)
배경
앞서 보인 부정적 태도와 정확히 짝을 이루는 자리입니다. 같은 수행자들이 시인이 짓고 화려한 말솜씨로 꾸며진, 부처님이 아니라 외도나 제자들이 지은 글을 낭송할 때는 오히려 열심히 듣고 배우려 한다고 말합니다. 이 대조 뒤에 ‘이렇게 하여 깨달음에 이른 이가 펴신 깊은 경들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결론이 따라옵니다. 원인은 무엇을 배울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지, 그 마음의 방향이 바뀌는 데 있다는 것을 밝히는 대목입니다.
묵상
듣기 좋고 화려한 말이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런 말만 찾다 보면 정작 곱씹어야 할 말을 지나치게 될 수 있어요. 최근에 오래 곱씹어 본 말과, 그냥 듣기 좋아서 흘려보낸 말을 하나씩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깨달음에 이른 이께서 펴신 깊고 뜻이 깊고 세간을 넘어서고 공함을 다루는 경들을 외울 때,
우리는 듣고자 하고 귀 기울이고 앎을 위해 마음을 두며,
그 가르침들을 배우고 지닐 만하다 여기리라’라고.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이는 일곱 번째로 펴진 경이다.
Tasmātiha, bhikkhave, evaṁ sikkhitabbaṁ: ‘ye te suttantā tathāgatabhāsitā gambhīrā gambhīratthā lokuttarā suññatappaṭisaṁyuttā, tesu bhaññamānesu sussūsissāma, sotaṁ odahissāma, aññā cittaṁ upaṭṭhāpessāma, te ca dhamme uggahetabbaṁ pariyāpuṇitabbaṁ maññissāmā’ti. Evañhi vo, bhikkhave, sikkhitabban”ti.
상윳따 니까야 SN 20.7 아니 숫따 (쐐기)
배경
경의 마무리로, 부처님께서는 수행자들에게 규범을 제시하십니다. 앞서 경고하듯 나열했던 네 가지 태도를 ‘우리는 그렇게 하겠다’는 다짐의 문장으로 그대로 뒤집어 반복하게 하십니다. 끝의 ‘일곱 번째’는 이 경이 속한 비유 품에서 몇 번째로 펴진 경인지를 적어 둔 표시입니다.
묵상
이 경은 하지 말아야 할 태도를 먼저 경고한 뒤, 다짐의 말로 다시 들려줘요. 나에게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말이 있다면,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마음에 붙들어 두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