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사왓티에서. 그곳에서 … “수행자들이여, 물질·느낌·인식·지어내는 작용·의식은 그대로 있지 않다. 이와 같이 보는 배운 거룩한 제자는 물질·느낌·인식·지어내는 작용·의식에 싫증이 난다. 싫증이 나면 탐냄이 빛바래고, 탐냄이 빛바래면 풀려나며, 풀려나면 ‘풀려났다’는 앎이 생긴다. ‘태어남은 다했고, 거룩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해야 할 일을 마쳤고, 다시 이런 존재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안다.”
Evaṁ me sutaṁ—sāvatthiyaṁ. Tatra kho …pe… “rūpaṁ, bhikkhave, aniccaṁ, vedanā aniccā, saññā aniccā, saṅkhārā aniccā, viññāṇaṁ aniccaṁ. Evaṁ passaṁ, bhikkhave, sutavā ariyasāvako rūpasmimpi nibbindati, vedanāyapi nibbindati, saññāyapi nibbindati, saṅkhāresupi nibbindati, viññāṇasmimpi nibbindati. Nibbindaṁ virajjati; virāgā vimuccati. Vimuttasmiṁ vimuttamiti ñāṇaṁ hoti.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pajānātī”ti.
배경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라는 전승자의 말과 사왓티라는 장소를 밝힌 뒤, 곧바로 “수행자들이여”라는 부처님의 말씀으로 들어갑니다. 본문은 물질·느낌·인식·지어내는 작용·의식의 순서로 다섯 무더기 모두를 그대로 있지 않다고 밝힙니다. “이와 같이 보는” 배운 거룩한 제자는 같은 다섯 무더기에 차례로 싫증이 나고, 그 싫증은 탐냄의 빛바램, 풀려남, 풀려났다는 앎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싫증은 변하는 무더기에서 영원한 만족을 찾던 매혹이 풀리는 방향입니다. 마지막 네 선언은 태어남·거룩한 삶·해야 할 일·다시 돌아옴에 관해 수행의 완결을 확인합니다.
묵상
다섯 무더기가 그대로 있지 않다는 첫 선언과 싫증·탐냄의 빛바램·풀려남·앎이 이어지는 과정 가운데 어느 연결이 가장 천천히 읽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