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온전히 풀려나거나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경지에 이르다

첫 선정의 통찰에서 번뇌가 다하거나, 다섯 낮은 족쇄가 다해 돌아오지 않는 두 결과를 밝힙니다.

“그는 그 자리에 머물러 번뇌의 소멸에 이르느니라. 그러지 못하면, 그 명상 상태에 대한 사랑과 기쁨으로 다섯 낮은 족쇄가 다해 저절로 태어나며, 거기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그 세계로 돌아오지 않느니라. 장자여, 이것이 세존께서 밝히신 한 가지이니라.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굳은 뜻으로 머무는 수행자의 아직 풀리지 않은 마음이 풀리고, 아직 다하지 않은 번뇌가 다하며, 아직 이르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이르느니라.”

So tattha ṭhito āsavānaṁ khayaṁ pāpuṇāti. No ce āsavānaṁ khayaṁ pāpuṇāti, teneva dhammarāgena tāya dhammanandiyā pañcannaṁ orambhāgiyānaṁ saṁyojanānaṁ parikkhayā opapātiko hoti tattha parinibbāyī anāvattidhammo tasmā lokā. Ayampi kho, gahapati,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ekadhammo akkhāto, yattha bhikkhuno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avimuttañceva cittaṁ vimuccati, aparikkhīṇā ca āsavā parikkhayaṁ gacchanti, ananuppattañca anuttaraṁ yogakkhemaṁ anupāpuṇāti.

맛지마 니까야 MN 52 앗타까나가라 경 (Aṭṭhakanāgarasutta)

배경

첫 선정의 조건성을 안 뒤 결과가 두 갈래로 제시됩니다. 첫째는 그 자리에 머물러 번뇌가 다하는 것이고, No ce로 시작하는 둘째는 아직 거기 이르지 못한 경우입니다. dhammarāga와 dhammanandi의 dhamma는 앞의 명상 상태를 가리키므로 그 상태에 대한 사랑과 기쁨으로 옮겼습니다. 다섯 낮은 족쇄가 다하면 저절로 태어난 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고 돌아오지 않습니다. 마지막은 세존이 밝힌 한 가지와 세 미완 조건·결과를 첫 등장에서 줄이지 않고 온전히 닫습니다.

묵상

첫 결과에 이르지 못한 경우까지 따로 밝힌 문장에서 어떤 여지가 느껴지나요? 두 결과 중 자신을 판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러지 못하면” 뒤에도 길이 이어진다는 구조만 잠시 살펴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