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선정이라는 넷째 문

행복을 버린 네 번째 선정도 조건 지어진 것으로 성찰해 같은 해탈의 방향을 확인합니다.

“다시 장자여, 수행자는 행복을 버려 … 네 번째 선정에 들어 머무느니라. 그는 성찰하느니라. ‘이 네 번째 선정도 지어지고 의도된 것입니다. … 위없는 안온에 이릅니다.’”

Puna caparaṁ, gahapati, bhikkhu sukhassa ca pahānā …pe… catutth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So iti paṭisañcikkhati: ‘idampi kho catutthaṁ jhānaṁ abhisaṅkhataṁ abhisañcetayitaṁ …pe… anuttaraṁ yogakkhemaṁ anupāpuṇāti.

맛지마 니까야 MN 52 앗타까나가라 경 (Aṭṭhakanāgarasutta)

배경

넷째 문은 네 번째 선정입니다. sukhassa pahāna, 행복을 버린다는 시작 뒤 첫 공식 생략표 …pe…가 괴로움과 기쁨·슬픔의 소멸, 평온으로 맑아진 알아차림이라는 정형구를 줄입니다. 둘째 공식 생략표 …pe…는 이 선정도 조건 지어져 무상하고 사라짐을 아는 통찰과 두 결과, 닫는 선언을 줄인 뒤 위없는 안온으로 끝납니다. 공식 생략표 두 개를 양언어에서 같은 자리에 보존했습니다. 가장 평온한 물질적 선정도 붙잡을 최종 피난처가 아니라 해탈을 향한 통찰의 토대입니다.

묵상

행복까지 버린 평온을 공허함이나 무감각과 곧바로 같게 보지는 않나요? 경험을 만들어 내거나 평가할 필요는 없어요. 네 번째 선정마저 조건 지어진 것이라는 한 구절만 머물러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