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장자여, 수행자는 자애와 함께한 마음을 첫째·둘째·셋째·넷째 방향으로 펼치느니라. 위·아래·가로·모든 곳, 온 세상에 넓고 크고 한량없으며 원한과 악의 없는 자애의 마음을 펼쳐 머무느니라. 그는 성찰하느니라. ‘이 자애의 마음 해탈도 지어지고 의도된 것입니다. 무엇이든 그러한 것은 무상하고 사라지는 성품입니다.’ 그는 이를 아느니라. 거기에 서서 … 위없는 안온에 이르느니라.”
Puna caparaṁ, gahapati, bhikkhu mettāsahagatena cetasā ekaṁ disaṁ pharitvā viharati, tathā dutiyaṁ, tathā tatiyaṁ, tathā catutthaṁ. Iti uddhamadho tiriyaṁ sabbadhi sabbattatāya sabbāvantaṁ lokaṁ mettāsahagatena cetasā vipulena mahaggatena appamāṇena averena abyābajjhena pharitvā viharati. So iti paṭisañcikkhati: ‘ayampi kho mettācetovimutti abhisaṅkhatā abhisañcetayitā. Yaṁ kho pana kiñci abhisaṅkhataṁ abhisañcetayitaṁ tadaniccaṁ nirodhadhamman’ti pajānāti. So tattha ṭhito …pe… anuttaraṁ yogakkhemaṁ anupāpuṇāti.
맛지마 니까야 MN 52 앗타까나가라 경 (Aṭṭhakanāgarasutta)배경
다섯째 문은 자애의 마음 해탈입니다. 네 방향과 위·아래·가로·모든 곳, 온 세상이라는 범위와 넓음·큼·한량없음·원한 없음·악의 없음의 다섯 성격을 보존했습니다. 그 넓어진 마음도 지어지고 의도되어 무상하고 사라진다고 압니다. 공식 생략표 …pe… 한 곳은 “거기에 서서” 뒤 앞에서 온전히 제시된 두 결과와 세존이 밝힌 한 가지라는 닫음을 줄이고 마지막 위없는 안온을 잇습니다. 자애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자애의 고요마저 소유하지 않는 통찰이 결합됩니다.
묵상
원한과 악의 없는 넓은 마음도 지어지고 의도된 것이라는 말이 자애의 가치를 줄이는 듯 들리나요? 그 판단을 고치려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넓게 펼치는 일과 붙들지 않는 일이 함께 놓인 점을 살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