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장자여, 수행자는 무한한 의식의 영역을 완전히 넘어 ‘아무것도 없다’고 알아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에 들어 머무느니라. 그는 성찰하느니라. ‘이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 성취도 지어지고 의도된 것입니다. 무엇이든 지어지고 의도된 것은 무상하고 사라지는 성품입니다.’ 그는 이와 같이 아느니라.”
Puna caparaṁ, gahapati, bhikkhu sabbaso viññāṇañcāyatanaṁ samatikkamma ‘natthi kiñcī’ti ākiñcaññāyatanaṁ upasampajja viharati. So iti paṭisañcikkhati: ‘ayampi kho ākiñcaññāyatanasamāpatti abhisaṅkhatā abhisañcetayitā. Yaṁ kho pana kiñci abhisaṅkhataṁ abhisañcetayitaṁ tadaniccaṁ nirodhadhamman’ti pajānāti.
맛지마 니까야 MN 52 앗타까나가라 경 (Aṭṭhakanāgarasutta)배경
열한째이자 마지막 문은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입니다. 수행자는 무한한 의식의 영역을 완전히 넘고 natthi kiñci, 아무것도 없다고 알아 들어갑니다. 여기에는 공식 생략표가 없으며 진입·성찰·조건성의 앎이 직접 반복됩니다. 대상이 거의 없는 미세한 성취도 abhisaṅkhata와 abhisañcetayita, 지어지고 의도된 것이어서 무상하고 사라지는 성품입니다. 아무것도 없음이라는 고요조차 최종 해탈로 동일시하지 않는 통찰이 열한 문을 완성합니다.
묵상
“아무것도 없다”는 고요마저 지어지고 의도되어 사라진다는 말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공허감과 명상 영역을 같은 것으로 진단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가장 미세한 상태도 붙들지 않는 방향만 살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