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집의 어느 문으로도 안전해지다

열한 문이 난 불붙은 집에서 어느 문으로든 안전해지는 비유를 들고 아난다에게 공양하겠다고 합니다.

“존자여, 열한 문이 난 사람의 집에 불이 붙으면 어느 문으로든 자신을 안전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존자여, 저는 이 열한 죽지 않음의 문 가운데 어느 하나로도 자신을 안전하게 할 수 있습니다. 존자여, 다른 종교인들도 스승에게 스승의 보수를 마련합니다. 제가 어찌 아난다 존자께 공양하지 않겠습니까?”

Seyyathāpi, bhante, purisassa agāraṁ ekādasadvāraṁ, so tasmiṁ agāre āditte ekamekenapi dvārena sakkuṇeyya attānaṁ sotthiṁ kātuṁ; evameva kho ahaṁ, bhante, imesaṁ ekādasannaṁ amatadvārānaṁ ekamekenapi amatadvārena sakkuṇissāmi attānaṁ sotthiṁ kātuṁ. Imehi nāma, bhante, aññatitthiyā ācariyassa ācariyadhanaṁ pariyesissanti, kimaṅgaṁ panāhaṁ āyasmato ānandassa pūjaṁ na karissāmī”ti.

맛지마 니까야 MN 52 앗타까나가라 경 (Aṭṭhakanāgarasutta)

배경

둘째 비유는 열한 문을 실제 탈출 가능성과 연결합니다. 불붙은 집에는 열한 문이 있고 ekamekenapi, 그 하나하나 어느 문으로도 자신을 안전하게 할 수 있습니다. 적용도 열한 죽지 않음의 문 각각이 안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같은 단수·전체 관계를 반복합니다. 이어 다른 종교인도 스승의 보수를 마련한다는 비교를 들어 아난다에게 공양할 이유를 밝힙니다. 비유의 중심은 열한 문을 모두 동시에 통과해야 한다는 데 있지 않고 어느 한 문도 해탈의 실제 입구가 된다는 데 있습니다.

묵상

열한 문을 모두 거쳐야 하는 계단이 아니라 어느 하나로도 안전해질 수 있는 문으로 비유한 점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지금 문을 고를 필요는 없어요. 여러 길이 열려 있다는 사실만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