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바라문이여, 어떤 이는 악행·잔혹한 일·죄를 짓지 않고,
선행·유익한 일·두려움에서 지켜 줄 일을 했습니다.
어떤 중한 병고가 그에게 닥칩니다.
그 중한 병고에 시달리는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악행·잔혹한 일·죄를 짓지 않았고,
선행·유익한 일·두려움에서 지켜 줄 일을 했다.
아, 악행·잔혹한 일·죄를 짓지 않고
선행·유익한 일·두려움에서 지켜 줄 일을 한 이들이 가는 곳으로 나도 죽은 뒤 가리라.’
Puna caparaṁ, brāhmaṇa, idhekacco akatapāpo hoti akataluddo akatakibbiso katakalyāṇo katakusalo katabhīruttāṇo. Tamenaṁ aññataro gāḷho rogātaṅko phusati. Tassa aññatarena gāḷhena rogātaṅkena phuṭṭhassa evaṁ hoti: ‘akataṁ vata me pāpaṁ, akataṁ luddaṁ, akataṁ kibbisaṁ; kataṁ kalyāṇaṁ, kataṁ kusalaṁ, kataṁ bhīruttāṇaṁ. Yāvatā, bho, akatapāpānaṁ akataluddānaṁ akatakibbisānaṁ katakalyāṇānaṁ katakusalānaṁ katabhīruttāṇānaṁ gati taṁ gatiṁ pecca gacchām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4.184 두려움 없음경 (Abhayasutta) 배경
두려움 없음의 세 번째 부류 전반부이며, 행위 상태와 중한 병고 및 그때의 생각을 담고 반응은 다음 카드에서 닫힙니다. 나쁜 쪽의 악행·잔혹한 일·죄를 짓지 않음과 좋은 쪽의 선행·유익한 일·두려움에서 지켜 줄 일을 함이 앞의 세 번째 두려움과 순서까지 반전됩니다. 여섯 항목은 현재 상태, 자기 회고, 같은 행위를 한 사람들의 행선에서 세 번 반복됩니다. 중한 병고도 닥침과 시달림으로 두 번 나타납니다. 기존 thematic 인용이 실제로 소유한 연속 범위가 바로 9.1-9.8이며, 이 카드는 그 가운데 직접 생각까지를 원문 순서대로 소유합니다.
묵상
하지 않은 세 항목과 행한 세 항목이 앞의 부류와 거울처럼 바뀌는 배열은 어떻게 보이나요? 자신의 삶 전체를 이 목록으로 판정하거나 안심을 강요할 필요는 없어요. 지금 살필 수 있다면, 같은 여섯 항목이 세 번 되풀이되며 방향만 바뀐다는 점만 보아도 괜찮아요.
“그러나 마하나마여, 그대에게는 오랫동안
믿음이 밴 마음 …
지혜가 밴 마음이 있느니라.
마하나마여, 두려워하지 말라.
마하나마여, 두려워하지 말라.
그대의 죽음은 나쁘지 않을 것이며,
그대의 임종도 나쁘지 않을 것이니라.”
Tuyhaṁ kho pana, mahānāma, dīgharattaṁ saddhāparibhāvitaṁ cittaṁ …pe… paññāparibhāvitaṁ cittaṁ. Mā bhāyi, mahānāma, mā bhāyi, mahānāma. Apāpakaṁ te maraṇaṁ bhavissati, apāpikā kālaṅkiriyā”ti.
상윳따 니까야 SN 55.21 첫 번째 마하나마경 (Paṭhamamahānāmasutta) 배경
일반적인 사람에게 비유를 적용한 뒤, “그러나 그대의”라는 방향으로 마하나마 자신에게 돌아와 경을 맺는 대목입니다. 첫문장의 “…pe…”는 믿음과 지혜 사이의 수행 항목을 원문 자체가 줄인 한 번의 표시이므로, 앞서 드러난 목록을 임의로 풀지 않았습니다. 이어 “마하나마여”와 “두려워하지 말라”가 각각 두 번씩 되풀이되고, 죽음과 임종 둘 다 나쁘지 않다는 두 부정이 다시 나옵니다. 세존의 마지막 안심은 임종에 새 성취를 요구하지 않고, 마하나마의 다섯 수행이 오랫동안 마음에 배어 왔다는 확인에 근거합니다.
묵상
“그대에게는 오랫동안 수행이 밴 마음이 있다”는 말을 읽을 때, 마하나마에게 건넨 이 확인이 어떻게 들리나요? 자신의 죽음이나 수행 상태에 적용해야 할 필요는 없어요. 지금 버겁다면 건너뛰어도 괜찮고, 읽을 수 있다면 오래 이어 온 작고 해롭지 않은 방향 하나가 떠오르는지만 살펴볼 수 있나요?
“마하나마여, 지혜로운 재가 신자는
병들고 괴로우며 중병인 지혜로운 재가 신자를
네 안심의 가르침으로 안심시켜야 하느니라.
‘존자여, 안심하십시오.
그대에게는 부처님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분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
신들과 인간들의 스승, 깨달은 분, 세존이십니다.
존자여, 안심하십시오.
그대에게는 가르침에 대한 …
승가에 대한 …
성자들이 좋아하며 흠이 없고 …
집중으로 이끄는 계가 있습니다.’”
“Sappaññena, mahānāma, upāsakena sappañño upāsako ābādhiko dukkhito bāḷhagilāno catūhi assāsanīyehi dhammehi assāsetabbo: ‘assāsatāyasmā—atthāyasmato buddhe aveccappasādo itipi so bhagavā …pe… satthā devamanussānaṁ buddho bhagavāti. Assāsatāyasmā—atthāyasmato dhamme …pe… saṅghe …pe… ariyakantāni sīlāni akhaṇḍāni …pe… samādhisaṁvattanikānī’ti.
상윳따 니까야 SN 55.54 병자 경 (Gilānasutta) 배경
마하나마의 요청에 대한 첫 답은 병자의 애착부터 묻지 않고 네 가지 안심되는 가르침으로 안심시키는 일입니다. 네 항목은 부처님·가르침·승가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과 성자들이 좋아하는 계이며, “안심하십시오”도 두 번 반복됩니다. 네 곳의 “…pe…”는 제작자가 줄인 말이 아니라 Bilara 원문 자체가 각 정형구의 가운데를 생략한 표지이므로 풀어 쓰지 않았습니다. 이 순서는 중병인 사람에게 이미 갖춘 믿음과 계를 확인해 마음의 의지처를 먼저 일깨우고, 그 뒤의 더 어려운 문답을 위한 바탕을 놓습니다.
묵상
부처님·가르침·승가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과 성자들이 좋아하는 계라는 네 항목 가운데, 지금 이름만이라도 편안하게 알아지는 하나가 있나요? 모두 갖추었는지 평가할 필요는 없어요. 아무것도 고르고 싶지 않아도 괜찮아요. “안심하십시오”가 두 번 반복되는 울림만 들어 볼 수 있나요?
비구들이여, 이제 그대들에게 고한다.
모든 형성된 것은 사라지는 성품이니,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
Vayadhammā saṅkhārā, appamādena sampādetha.
디가 니까야 DN 16 대반열반경 (Mahāparinibbānasutta) 배경
부처님 자신의 임종입니다. 80세, 쿠시나가라, 두 그루의 사라나무 사이에서. 마지막 말씀이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입니다. 부처님의 죽음은 이 사이트의 모든 가르침의 최종 장면입니다. 사성제로 시작된 이야기가, 삼법인을 관통하고, 마음의 수행을 거쳐, 자비를 펼치고, 일상에서 실천하며, 여기 - 죽음 앞에서의 마지막 말씀 - 에 도달합니다. 부처님은 마지막까지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가르침은 가장 단순했습니다 - 깨어 있으라. 이것이 잘 죽는 법의 전부입니다 - 마지막 숨까지 깨어 있는 것.
묵상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은 이것입니다 -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 죽음은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연장선 위에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깨어서, 알아차리며, 자비롭게 살았다면 - 그것으로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