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시오, 왕자여. 수행자 고따마의 주장을 논파하십시오. 그러면 ‘큰 능력과 큰 위력을 지닌 수행자 고따마의 주장을 아바야 왕자가 논파했다’는 좋은 명성이 퍼질 것입니다.” “그러나 존자시여, 제가 어떻게 그토록 큰 능력과 큰 위력을 지닌 수행자 고따마의 주장을 논파하겠습니까?”
“ehi tvaṁ, rājakumāra, samaṇassa gotamassa vādaṁ āropehi. Evaṁ te kalyāṇo kittisaddo abbhuggacchissati: ‘abhayena rājakumārena samaṇassa gotamassa evaṁ mahiddhikassa evaṁ mahānubhāvassa vādo āropito’”ti. “Yathā kathaṁ panāhaṁ, bhante, samaṇassa gotamassa evaṁ mahiddhikassa evaṁ mahānubhāvassa vādaṁ āropessāmī”ti?
맛지마 니까야 MN 58 아바야 왕자경 (Abhayarājakumārasutta)배경
니간타 나타뿟따의 첫 제안은 논파라는 행위와 그 뒤에 퍼질 명성을 원인과 결과로 잇습니다. 세존을 “큰 능력과 큰 위력을 지닌 사문 고따마”라고 두 번 수식하는 까닭도, 그런 상대를 이겼다는 평판의 크기를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바야 왕자는 곧바로 동의하지 않고 같은 수식을 되받아 “어떻게” 논파할지를 묻습니다. 이 대화는 진실을 알아보려는 질문보다 승패와 평판을 목표로 삼은 계획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보여 주며, 이어지는 대목에서 구체적인 함정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논파 뒤에 좋은 명성이 따른다는 제안을 읽을 때, 말의 내용보다 승패나 평판이 먼저 놓이는 장면이 어떻게 다가오나요? 지금 나누는 대화에서도 이해보다 이겼다는 느낌을 앞세우는 순간이 있는지, 없다면 없다고 보아도 괜찮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