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수행자 고따마가 그런 질문을 받고 “아니요, 왕자여. 여래는 남들이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라고 답하면 이렇게 말하십시오. “그렇다면 존자시여, 왜 데와닷따를 두고 데와닷따는 나쁜 곳에 떨어지고 지옥에 가며 한 겁 동안 머물고 구제할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까? 그 말에 데와닷따는 성내고 마음이 상했습니다.”’
Sace pana te samaṇo gotamo evaṁ puṭṭho evaṁ byākaroti: “na, rājakumāra, tathāgato taṁ vācaṁ bhāseyya yā sā vācā paresaṁ appiyā amanāpā”ti, tamenaṁ tvaṁ evaṁ vadeyyāsi—atha kiñcarahi te, bhante, devadatto byākato: “āpāyiko devadatto, nerayiko devadatto, kappaṭṭho devadatto, atekiccho devadatto”ti? Tāya ca pana te vācāya devadatto kupito ahosi anattamano’ti.
맛지마 니까야 MN 58 아바야 왕자경 (Abhayarājakumārasutta)배경
보고의 둘째 조건은 “하지 않는다”라는 예상 답에서 시작합니다. 아바야는 데와닷따에 관한 네 선언, 곧 나쁜 곳에 떨어짐·지옥에 감·한 겁 동안 머묾·구제할 수 없음을 하나씩 되풀이하고, 그 말에 데와닷따가 성내고 마음이 상했다는 결과를 붙입니다. 첫째 조건과 마찬가지로 불쾌함만을 기준으로 삼아 반박하도록 짜인 갈래입니다. 왕자가 전달받은 문구를 세존 앞에서 그대로 밝힘으로써, 누가 질문을 만들고 누가 옮겼는지와 어떤 부정이 조건으로 놓였는지가 분명해집니다.
묵상
같은 둘째 조건을 다시 들은 뒤에도 예와 아니요만 가능한 문제로 보이나요? 반복 속에서 질문이 놓친 사실·이익·때의 조건이 더 분명해진다면, 지금 눈에 들어오는 하나는 무엇인지 천천히 살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