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 좋은 말도 같은 기준과 연민으로 살피다

남들이 좋아하는 말도 거짓이거나 해로우면 하지 않고, 참되고 이로울 때 적절한 때를 아는 까닭을 연민으로 밝힙니다.

“여래가 사실이 아니고 옳지 않으며 이익이 없고 남들이 좋아하고 마음에 들어 한다고 아는 말은 여래가 하지 않습니다. 여래가 사실이고 옳지만 이익이 없고 남들이 좋아하고 마음에 들어 한다고 아는 말도 여래가 하지 않습니다. 여래가 사실이고 옳고 이익이 있으며 남들이 좋아하고 마음에 들어 한다고 아는 말은, 여래가 그 말을 설명할 적절한 때를 압니다. 무슨 까닭입니까? 왕자여, 여래에게는 중생들에 대한 연민이 있기 때문입니다.”

Yaṁ tathāgato vācaṁ jānāti abhūtaṁ atacchaṁ anatthasaṁhitaṁ sā ca paresaṁ piyā manāpā, na taṁ tathāgato vācaṁ bhāsati. Yampi tathāgato vācaṁ jānāti bhūtaṁ tacchaṁ anatthasaṁhitaṁ sā ca paresaṁ piyā manāpā tampi tathāgato vācaṁ na bhāsati. Yañca tathāgato vācaṁ jānāti bhūtaṁ tacchaṁ atthasaṁhitaṁ sā ca paresaṁ piyā manāpā, tatra kālaññū tathāgato hoti tassā vācāya veyyākaraṇāya. Taṁ kissa hetu? Atthi, rājakumāra, tathāgatassa sattesu anukampā”ti.

맛지마 니까야 MN 58 아바야 왕자경 (Abhayarājakumārasutta)

배경

뒤의 세 경우는 남들이 좋아하고 마음에 들어 하는 말을 같은 순서로 검사합니다. 듣기 좋아도 거짓이고 이익이 없으면 말하지 않으며, 사실이어도 이익이 없으면 말하지 않습니다. 사실이고 이익 있는 말에는 다시 적절한 때가 붙습니다. 앞의 불쾌한 세 경우와 합하면 여섯 경우이며, 두 갈래 모두 거짓·해로운 참말·이로운 참말의 순서입니다. 마지막 문답은 이 판단 전체의 이유를 중생들에 대한 연민으로 밝혀, 때를 고르는 일이 인기나 회피가 아니라 이익을 향한 돌봄임을 보여 줍니다.

묵상

듣기 좋은 말도 거짓이거나 이익이 없으면 하지 않는다는 기준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상대의 호감과 실제 이익이 다를 수 있는 한 순간을 떠올리되, 판단하기 어렵다면 모른다고 두어도 괜찮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