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존이시여, 왕족 현자·바라문 현자·장자 현자·수행자 현자들이 질문을 미리 짜서 여래께 와 묻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그들이 이렇게 물으면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고 미리 마음속으로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그 자리에서 답이 여래께 떠오릅니까?”
“Yeme, bhante, khattiyapaṇḍitāpi brāhmaṇapaṇḍitāpi gahapatipaṇḍitāpi samaṇapaṇḍitāpi pañhaṁ abhisaṅkharitvā tathāgataṁ upasaṅkamitvā pucchanti, pubbeva nu kho, etaṁ, bhante, bhagavato cetaso parivitakkitaṁ hoti ‘ye maṁ upasaṅkamitvā evaṁ pucchissanti tesāhaṁ evaṁ puṭṭho evaṁ byākarissāmī’ti, udāhu ṭhānasovetaṁ tathāgataṁ paṭibhātī”ti?
맛지마 니까야 MN 58 아바야 왕자경 (Abhayarājakumārasutta)배경
여섯 말하기 경우를 들은 아바야는 답변이 어떻게 생기는지 새 질문을 냅니다. 질문자는 왕족·바라문·장자·사문 현자 네 부류이고, 그들은 질문을 미리 짜서 찾아옵니다. 아바야가 제시하는 선택지는 세존도 예상 문답을 미리 생각하는가, 아니면 답이 그 자리에서 떠오르는가의 둘입니다. 앞의 함정처럼 한 답을 공격하려는 두 갈래가 아니라, 세존이 분석해 답하는 능력의 근거를 묻는 전환입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세존은 왕자의 전차 지식을 이용해 왕자가 스스로 구조를 설명하게 합니다.
묵상
질문을 미리 준비하는 것과 답이 그 자리에서 떠오르는 것을 나란히 놓으면 어느 쪽이 더 익숙한가요? 준비와 즉석의 답을 서로 반대로만 보지 않고, 익숙한 앎이 작동하는 순간을 살펴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