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전차의 답은 그 자리에서 떠오르다

전차 부분의 이름을 물을 때 미리 답을 생각하는지 묻자, 왕자는 모든 부분을 잘 알아 답이 그 자리에서 떠오른다고 합니다.

“왕자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누군가 그대에게 와서 ‘이 전차 부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그들이 이렇게 물으면 이렇게 답하겠다’고 미리 생각해 둡니까? 아니면 그 자리에서 답이 떠오릅니까?” “세존이시여, 저는 전차의 크고 작은 부분에 능숙한 전차꾼으로 알려져 있고, 그 모든 부분을 잘 압니다. 그러므로 답이 그 자리에서 떠오릅니다.”

“Taṁ kiṁ maññasi, rājakumāra, ye taṁ upasaṅkamitvā evaṁ puccheyyuṁ: ‘kiṁ nāmidaṁ rathassa aṅgapaccaṅgan’ti? Pubbeva nu kho te etaṁ cetaso parivitakkitaṁ assa ‘ye maṁ upasaṅkamitvā evaṁ pucchissanti tesāhaṁ evaṁ puṭṭho evaṁ byākarissāmī’ti, udāhu ṭhānasovetaṁ paṭibhāseyyā”ti? “Ahañhi, bhante, rathiko saññāto kusalo rathassa aṅgapaccaṅgānaṁ. Sabbāni me rathassa aṅgapaccaṅgāni suviditāni. Ṭhānasovetaṁ maṁ paṭibhāseyyā”ti.

맛지마 니까야 MN 58 아바야 왕자경 (Abhayarājakumārasutta)

배경

두 번째 되물음은 아바야가 세존께 제시했던 두 선택을 전차에 그대로 적용합니다. 특정 부분의 이름을 묻는 사람이 올 때 답을 미리 생각해 두는지, 그 자리에서 떠오르는지를 묻습니다. 왕자는 자신이 전차꾼으로 알려져 있고 모든 크고 작은 부분을 잘 안다는 두 근거를 든 뒤, 답이 그 자리에서 떠오른다고 결론짓습니다. 즉 즉석의 답은 준비가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니라 대상을 충분히 아는 숙련에 기대고 있습니다. 이 결론이 이어지는 적용에서 여래가 가르침의 원리를 꿰뚫은 경우로 옮겨집니다.

묵상

전차의 모든 부분을 잘 알기에 답이 그 자리에서 떠오른다는 설명에서, 즉석성과 익숙함은 어떻게 이어지나요? 지금 내게 오래 익혀 자연스럽게 답하거나 움직일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는지 살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