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착은 무더기와 같지도 별개도 아니다

취착과 다섯 취착의 무더기의 관계를 두 극단으로 부정하고 욕구와 탐욕을 취착으로 밝힙니다.

“존자시여, 집착은 다섯 집착의 무더기와 같습니까, 아니면 그 무더기들과 별개입니까?” “위사카 벗이여, 집착은 그 무더기들과 같지도 않고 별개이지도 않습니다. 위사카 벗이여, 다섯 집착의 무더기를 향한 욕구와 탐욕이 거기서의 집착입니다.”

“Taññeva nu kho, ayye, upādānaṁ te pañcupādānakkhandhā udāhu aññatra pañcahupādānakkhandhehi upādānan”ti? “Na kho, āvuso visākha, taññeva upādānaṁ te pañcupādānakkhandhā, nāpi aññatra pañcahupādānakkhandhehi upādānaṁ. Yo kho, āvuso visākha,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chandarāgo taṁ tattha upādānan”ti.

맛지마 니까야 MN 44 교리문답의 짧은 경 (Cūḷavedallasutta)

배경

위사카는 취착과 다섯 무더기가 동일한지, 아니면 서로 떨어진 것인지 양쪽을 묻습니다. 담마딘나는 두 선택을 모두 부정합니다. 물질·느낌·인식·의지 작용·의식 자체를 곧 취착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 경험들과 전혀 무관한 별도 실체로 둘 수도 없습니다. 다섯 취착의 무더기를 향해 일어나는 욕구와 탐욕이 바로 거기서의 취착입니다. 두 부정을 함께 보존해야 경험과 관계를 혼동하지 않게 됩니다.

묵상

불편한 경험 자체를 없애야 자유로워진다고 느끼나요? 경험과 그것을 붙들려는 욕구를 구별해 보면, 지금 놓아야 할 것은 몸이나 느낌 그 자체인가요, 아니면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지속시키려는 관계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