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자시여, 작용은 몇 가지입니까?” “위사카 벗이여, 몸의 작용·말의 작용·마음의 작용, 이 세 가지입니다.” “존자시여, 각각 무엇입니까?” “위사카 벗이여, 들숨과 날숨은 몸의 작용,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생각은 말의 작용, 인식과 느낌은 마음의 작용입니다.”
“Kati panāyye, saṅkhārā”ti? “Tayome, āvuso visākha, saṅkhārā— kāyasaṅkhāro, vacīsaṅkhāro, cittasaṅkhāro”ti. “Katamo panāyye, kāyasaṅkhāro, katamo vacīsaṅkhāro, katamo cittasaṅkhāro”ti? “Assāsapassāsā kho, āvuso visākha, kāyasaṅkhāro, vitakkavicārā vacīsaṅkhāro, saññā ca vedanā ca cittasaṅkhāro”ti.
맛지마 니까야 MN 44 교리문답의 짧은 경 (Cūḷavedallasutta)배경
첫 문답은 saṅkhāra를 몸·말·마음의 세 작용으로 셉니다. 이어 위사카가 각 작용이 무엇인지 묻자 담마딘나는 들숨과 날숨,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생각, 인식과 느낌을 세 갈래에 각각 대응시킵니다. 여기서 의지 작용이라는 무더기의 이름과 이 세 작용을 무심코 같은 범위로 섞지 않았습니다. 다음 설명은 호흡이 몸에 매이고, 생각 뒤에 말이 나오며, 인식과 느낌이 마음에 매인다는 이유까지 밝힙니다.
묵상
말이 입에서 나온 순간만을 말의 시작이라고 보았나요? 말보다 앞서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는 과정까지 말의 작용에 포함한다면, 대화가 굳어지기 전에 알아차릴 수 있는 지점은 어디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