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자시여, 소멸에서 나온 수행자에게 몇 접촉이 닿습니까?” “위사카 벗이여, 공의 접촉·인식 없는 접촉· 지향 없는 접촉, 이 셋이 닿습니다.” “존자시여, 그의 마음은 어디로 기울고 향하고 쏠립니까?” “위사카 벗이여, 홀로됨으로 기울고, 홀로됨으로 향하며, 홀로됨으로 쏠립니다.”
“Saññāvedayitanirodhasamāpattiyā vuṭṭhitaṁ panāyye, bhikkhuṁ kati phassā phusantī”ti? “Saññāvedayitanirodhasamāpattiyā vuṭṭhitaṁ kho, āvuso visākha, bhikkhuṁ tayo phassā phusanti—suññato phasso, animitto phasso, appaṇihito phasso”ti. “Saññāvedayitanirodhasamāpattiyā vuṭṭhitassa panāyye, bhikkhuno kiṁninnaṁ cittaṁ hoti kiṁpoṇaṁ kiṁpabbhāran”ti? “Saññāvedayitanirodhasamāpattiyā vuṭṭhitassa kho, āvuso visākha, bhikkhuno vivekaninnaṁ cittaṁ hoti, vivekapoṇaṁ vivekapabbhāran”ti.
맛지마 니까야 MN 44 교리문답의 짧은 경 (Cūḷavedallasutta)배경
첫 문답은 인식과 느낌의 소멸에서 나온 수행자에게 닿는 접촉을 셋으로 셉니다. suññata·animitta·appaṇihita에 따른 공의 접촉, 표상 없는 접촉, 지향 없는 접촉입니다. 이어 마음의 방향을 ninna·poṇa·pabbhāra라는 세 동사로 묻고, 담마딘나는 세 동사를 모두 viveka, 곧 홀로됨에 연결해 되풀이합니다. 접촉 세 항목과 마음의 세 방향을 각각 줄이지 않아 출정 뒤의 경험과 기울기를 한 문장으로 뭉개지 않았습니다.
묵상
고요에서 나온 직후 마음을 곧바로 자극과 말로 채우려 하나요? 공·표상 없음·지향 없음의 접촉과 홀로됨으로 기우는 마음을 읽으며, 조용한 경험 뒤에 그 방향을 잠시 지켜 줄 여지는 어디에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