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느낌을 몸과 마음의 경험으로 정의하다

몸이나 마음에서 즐겁고 괴롭고 둘 다 아닌 것으로 느껴지는 경험을 세 느낌에 각각 대응시킵니다.

“존자시여, 세 느낌은 각각 무엇입니까?” “위사카 벗이여, 몸이나 마음에서 즐겁고 기분 좋게 느낀 것이 즐거운 느낌입니다. 위사카 벗이여, 몸이나 마음에서 괴롭고 기분 나쁘게 느낀 것이 괴로운 느낌입니다. 위사카 벗이여, 몸이나 마음에서 기분 좋지도 나쁘지도 않게 느낀 것이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입니다.”

“Katamā panāyye, sukhā vedanā, katamā dukkhā vedanā, katamā adukkhamasukhā vedanā”ti? “Yaṁ kho, āvuso visākha, kāyikaṁ vā cetasikaṁ vā sukhaṁ sātaṁ vedayitaṁ— ayaṁ sukhā vedanā. Yaṁ kho, āvuso visākha, kāyikaṁ vā cetasikaṁ vā dukkhaṁ asātaṁ vedayitaṁ— ayaṁ dukkhā vedanā. Yaṁ kho, āvuso visākha, kāyikaṁ vā cetasikaṁ vā neva sātaṁ nāsātaṁ vedayitaṁ— ayaṁ adukkhamasukhā vedanā”ti.

맛지마 니까야 MN 44 교리문답의 짧은 경 (Cūḷavedallasutta)

배경

담마딘나는 세 느낌을 몸의 느낌으로만 좁히지 않습니다. 몸이나 마음에서 sukha·sāta, 곧 즐겁고 기분 좋게 느낀 것이 즐거운 느낌입니다. 몸이나 마음에서 dukkha·asāta, 곧 괴롭고 기분 나쁘게 느낀 것이 괴로운 느낌입니다. 마지막으로 몸이나 마음에서 기분 좋지도 나쁘지도 않게 느낀 것이 중립의 느낌입니다. 몸과 마음이라는 두 범위를 세 정의에 모두 적용하여 어느 한 느낌의 영역을 누락하지 않았습니다.

묵상

마음에서 일어난 느낌은 생각일 뿐이라며 무시하거나, 몸의 느낌만 실제라고 여기나요? 지금 경험을 몸과 마음 두 자리에서 함께 살펴보면 즐거움·괴로움·그 어느 쪽도 아님 가운데 무엇이 조용히 드러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