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느낌의 즐거움과 괴로움

즐거운 느낌과 괴로운 느낌은 머무름과 변화로, 중립 느낌은 앎과 무지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구별합니다.

“존자시여, 세 느낌에서 무엇이 즐겁고 무엇이 괴롭습니까?” “위사카 벗이여, 즐거운 느낌은 머물 때 즐겁고 변할 때 괴롭습니다. 괴로운 느낌은 머물 때 괴롭고 변할 때 즐겁습니다.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은 앎이 있을 때 즐겁고, 앎이 없을 때 괴롭습니다.”

“Sukhā panāyye, vedanā kiṁsukhā kiṁdukkhā, dukkhā vedanā kiṁsukhā kiṁdukkhā, adukkhamasukhā vedanā kiṁsukhā kiṁdukkhā”ti? “Sukhā kho, āvuso visākha, vedanā ṭhitisukhā vipariṇāmadukkhā; dukkhā vedanā ṭhitidukkhā vipariṇāmasukhā; adukkhamasukhā vedanā ñāṇasukhā aññāṇadukkhā”ti.

맛지마 니까야 MN 44 교리문답의 짧은 경 (Cūḷavedallasutta)

배경

질문은 세 느낌마다 즐거운 면과 괴로운 면을 함께 묻습니다. 즐거운 느낌은 머무는 동안 즐겁지만 변할 때 괴롭고, 괴로운 느낌은 머무는 동안 괴롭지만 변할 때 즐겁습니다. 중립 느낌에는 같은 변화 공식을 적용하지 않고, ñāṇa와 aññāṇa, 곧 앎의 있음과 없음으로 구별합니다. 세 느낌의 답을 하나의 단순한 좋고 나쁨으로 평평하게 만들지 않아야 변화와 알아차림이라는 서로 다른 기준이 드러납니다.

묵상

즐거움은 늘 좋고 괴로움은 늘 나쁘다고 고정해 두었나요? 느낌의 머무름과 변화, 중립 느낌을 아는지 모르는지를 따로 살펴보면 지금의 느낌에 덧붙인 판단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