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사카 벗이여, 수행자는 이렇게 돌아봅니다. ‘나는 언제 성스러운 이들이 지금 들어 머무는 경지에 들어 머물게 될까?’ 최상의 해탈들을 바라는 마음을 세울 때 그 바람을 조건으로 근심이 일어납니다. 그것으로 반감을 버리며, 그곳에는 반감의 잠재 성향이 잠재하지 않습니다.
Idhāvuso visākha, bhikkhu iti paṭisañcikkhati: ‘kudāssu nāmāhaṁ tadāyatanaṁ upasampajja viharissāmi yadariyā etarahi āyatanaṁ upasampajja viharantī’ti? Iti anuttaresu vimokkhesu pihaṁ upaṭṭhāpayato uppajjati pihāppaccayā domanassaṁ. Paṭighaṁ tena pajahati, na tattha paṭighānusayo anuseti.
맛지마 니까야 MN 44 교리문답의 짧은 경 (Cūḷavedallasutta)배경
두 번째 예외는 괴로운 느낌과 관련됩니다. 수행자는 성스러운 이들이 지금 들어 머무는 경지에 자신은 언제 들게 될지 돌아봅니다. 최상의 해탈들을 향한 piha, 곧 바람을 세우고 그 바람을 조건으로 domanassa, 근심이 일어납니다. 담마딘나는 그 근심으로 반감을 버리며 그곳에는 반감의 잠재 성향이 잠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괴로운 느낌의 내용과 방향을 보지 않고 모두 반감으로 환원해서는 안 됩니다.
묵상
괴로운 느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마음이 해롭다고 단정하나요? 경문은 최상의 해탈을 향한 바람에서 생긴 근심이 반감을 버리는 사례를 듭니다. 느낌의 이름보다 그것이 기대는 방향과 결과를 살피면 무엇이 달리 보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