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깔리여, 마음에 걸림이나 후회가 없느냐?” “세존이시여, 제게는 적지 않은 마음의 걸림과 후회가 있습니다.” “계행 때문에 자신을 나무라는 것은 아니냐?” “세존이시여, 계행 때문에 자신을 나무라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 “세존이시여, 오랫동안 세존을 뵈러 가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만큼 몸에 힘이 없었습니다.”
“Kacci te, vakkali, na kiñci kukkuccaṁ, na koci vippaṭisāro”ti? “Taggha me, bhante, anappakaṁ kukkuccaṁ, anappako vippaṭisāro”ti. “Kacci pana taṁ, vakkali, attā sīlato na upavadatī”ti? “Na kho maṁ, bhante, attā sīlato upavadatī”ti. “No ce kira taṁ, vakkali, attā sīlato upavadati; atha kiñca te kukkuccaṁ ko ca vippaṭisāro”ti? “Cirapaṭikāhaṁ, bhante, bhagavantaṁ dassanāya upasaṅkamitukāmo, natthi ca me kāyasmiṁ tāvatikā balamattā, yāvatāhaṁ bhagavantaṁ dassanāya upasaṅkameyyan”ti.
상윳따 니까야 SN 22.87 바깔리경 (Vakkalisutta)배경
세존은 kukkucca와 vippaṭisāra, 마음에 걸림과 후회가 있는지 묻고, 이어 그것이 계행을 어긴 데서 온 자책인지 확인합니다. 바깔리는 후회가 적지 않다고 인정하지만 계행 때문에 자신을 나무라는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부정합니다. 세존이 다시 까닭을 묻자, 오랫동안 직접 뵙고 싶었으나 찾아갈 만큼 몸의 힘이 없었다고 답합니다. 윤리적 잘못과 만나지 못한 안타까움을 섞지 않았으며, 후회의 대상은 다음 가르침을 여는 정확한 질문이 됩니다.
묵상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을 때 실제 잘못과 이루지 못한 바람을 구별해 본 적이 있나요? 두 가지를 같은 자책으로 묶지 않고 “무엇 때문인가”라고 한 번 더 물으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지금 답이 없으면 질문만 남겨 두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