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하여라, 바깔리여. 이 썩어가는 몸을 보아 무엇 하겠느냐? 바깔리여, 가르침을 보는 사람은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사람은 가르침을 보느니라. 가르침을 보면서 나를 보고, 나를 보면서 가르침을 보느니라.”
“Alaṁ, vakkali, kiṁ te iminā pūtikāyena diṭṭhena? Yo kho, vakkali, dhammaṁ passati so maṁ passati; yo maṁ passati so dhammaṁ passati. Dhammañhi, vakkali, passanto maṁ passati; maṁ passanto dhammaṁ passati.
상윳따 니까야 SN 22.87 바깔리경 (Vakkalisutta)배경
바깔리가 직접 뵙지 못한 일을 후회하자 세존은 자신의 몸을 pūtikāya, 썩어가는 몸이라고 부르며 그것을 보는 데 무엇이 있겠느냐고 되묻습니다. 이어 dhamma를 “가르침”으로 옮겨, 가르침을 보는 사람과 자신을 보는 사람의 관계를 두 문장으로 말하고, 현재분사 passanto를 써 같은 뜻을 다시 두 문장으로 밝힙니다. 네 관계를 한 표어로 줄이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본다”는 말을 어디에서나 원하는 의미를 찾는 일로 넓히지 않고, 곧 이어지는 다섯 무더기의 관찰과 연결합니다.
묵상
누군가의 몸이나 모습과 그가 전한 가르침을 구별하라는 말이 어떻게 들리나요? 사람을 직접 만나야만 이해할 수 있다고 느꼈던 일이 있나요? 그 생각을 탓하지 말고, 지금 읽는 가르침 자체에서 확인할 한 문장만 골라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