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깔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질은 영원하냐, 무상하냐?”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냐, 행복이냐?”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는 성품인 것을 ‘이것은 나의 것, 이것이 나, 이것이 나의 자아’라고 보는 것이 알맞으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Taṁ kiṁ maññasi, vakkali, rūpaṁ niccaṁ vā aniccaṁ vā”ti? “Aniccaṁ, bhante”. “Yaṁ panāniccaṁ dukkhaṁ vā taṁ sukhaṁ vā”ti? “Dukkhaṁ, bhante”. “Yaṁ panāniccaṁ dukkhaṁ vipariṇāmadhammaṁ, kallaṁ nu taṁ samanupassituṁ: ‘etaṁ mama, esohamasmi, eso me attā’”ti? “No hetaṁ, bhante”.
상윳따 니까야 SN 22.87 바깔리경 (Vakkalisutta)배경
가르침을 본다는 말 뒤 첫 검토 대상은 rūpa, 물질입니다. 세존은 영원함과 무상함을 묻고, 무상한 것이 괴로움인지 행복인지 물은 다음, 무상·괴로움·변하는 성품이라는 세 근거에서 세 가지 동일시가 알맞은지 묻습니다. “이것은 나의 것”, “이것이 나”, “이것이 나의 자아”는 소유·동일시·자아라는 서로 다른 문법 관계입니다. 바깔리는 각 질문에 무상, 괴로움, 그렇지 않다고 답합니다. 몸을 미워하라는 말이 아니라 물질을 영원한 주인으로 삼을 수 있는지 검토합니다.
묵상
“나의 것”, “나”, “나의 자아”라는 세 말은 물질에 대어 볼 때 서로 어떻게 다르게 들리나요? 결론을 억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요. 몸이 변한다는 사실과 그 몸을 돌보는 일을 함께 놓아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