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존의 안심을 듣고 다시 문안하다

바깔리가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듣고 비구들에게 자신의 문안을 다시 전해 달라고 합니다.

“바깔리 벗이여, 또 세존께서는 그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바깔리여. 두려워하지 마라. 너의 죽음은 나쁘지 않을 것이며, 네가 숨을 거두는 일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바깔리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벗들이여, 나를 대신해 세존의 두 발에 머리 숙여 절하고 말씀드려 주십시오. ‘세존이시여, 바깔리 수행자가 병들고 괴로워 심하게 앓으며 세존의 두 발에 머리 숙여 절합니다.’”

Bhagavā ca taṁ, āvuso vakkali, evamāha: ‘mā bhāyi, vakkali; mā bhāyi, vakkali. Apāpakaṁ te maraṇaṁ bhavissati, apāpikā kālakiriyā’”ti. “Tena hāvuso, mama vacanena bhagavato pāde sirasā vandatha: ‘vakkali, bhante, bhikkhu ābādhiko dukkhito bāḷhagilāno. So bhagavato pāde sirasā vandatī’ti. Evañca vadetha:

상윳따 니까야 SN 22.87 바깔리경 (Vakkalisutta)

배경

수행자들은 세존의 말씀을 두 번의 “두려워하지 마라”와 죽음·숨을 거둠에 대한 두 판단까지 그대로 전합니다. 바깔리는 그 말을 들은 뒤 자신을 대신해 다시 세존의 두 발에 머리 숙여 절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자신의 상태도 처음과 같은 세 표현, 병들고 괴로워 심하게 앓는다고 전합니다. 세존의 안심과 바깔리의 문안을 인과로 과장하지 않았으며, 바깔리는 이어 다섯 무더기에 관한 자신의 이해를 말해 달라고 새 요청을 시작합니다.

묵상

안심시키는 말을 들은 뒤 바깔리가 다시 예를 표하고 자신의 상태를 숨기지 않는 순서가 어떻게 다가오나요? 위로를 받았다고 고통이 곧 사라져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위로와 아픔이 함께 있을 수 있음을 허용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