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렇게 말씀드려 주십시오. ‘물질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라는 데 의혹이 없습니다.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는 성품인 것에 제게 욕구나 탐욕이나 애정이 없다는 데에도 의혹이 없습니다.’”
‘rūpaṁ aniccaṁ. Tāhaṁ, bhante, na kaṅkhāmi. Yadaniccaṁ taṁ dukkhanti na vicikicchāmi. Yadaniccaṁ dukkhaṁ vipariṇāmadhammaṁ, natthi me tattha chando vā rāgo vā pemaṁ vāti na vicikicchāmi.
상윳따 니까야 SN 22.87 바깔리경 (Vakkalisutta)배경
바깔리가 세존께 전하려는 자신의 이해는 물질에서 시작합니다. 첫째 물질이 무상하다는 데 kaṅkhā, 의심이 없고, 둘째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라는 데 vicikicchā, 의혹이 없으며, 셋째 무상·괴로움·변하는 성품인 물질에 chanda·rāga·pema, 욕구·탐욕·애정이 없다는 데에도 의혹이 없다고 합니다. 세 확신을 한 문장으로 합치지 않았습니다. 이는 모든 감정이 사라졌다는 포괄 선언이 아니라, 물질에 대한 세 관계를 특정해 말한 것입니다.
묵상
무상함·괴로움·욕구 없음이라는 세 문장을 따로 읽으면 어느 사이의 연결이 가장 어렵게 느껴지나요? 바깔리와 같은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재촉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의문이 남는 자리 자체를 알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