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의 교설은 무엇이며, 무엇을 가르칩니까?” “벗이여, 나의 가르침은 신과 마라와 범천, 수행자와 바라문, 신과 인간이 있는 세상에서 누구와도 다투지 않습니다. 감각적 욕망에서 떨어져 머물고, 의심이 없고 후회를 끊었으며, 이 존재와 저 존재에 대한 갈애를 벗어난 그 바라문에게 인식들이 잠재하지 않습니다. 벗이여, 나는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가르칩니다.”
“kiṁvādī samaṇo kimakkhāyī”ti? “Yathāvādī kho, āvuso, sadevake loke samārake sabrahmake sassamaṇabrāhmaṇiyā pajāya sadevamanussāya na kenaci loke viggayha tiṭṭhati, yathā ca pana kāmehi visaṁyuttaṁ viharantaṁ taṁ brāhmaṇaṁ akathaṅkathiṁ chinnakukkuccaṁ bhavābhave vītataṇhaṁ saññā nānusenti—evaṁvādī kho ahaṁ, āvuso, evamakkhāyī”ti.
맛지마 니까야 MN 18 꿀덩어리경 (Madhupiṇḍikasutta)배경
단다빠니의 두 물음에 세존께서는 교설의 이름이 아니라 그 작용으로 답하십니다. 첫째는 신·마라·범천과 사문·바라문, 신·인간을 아우르는 세상에서 누구와도 다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감각적 쾌락과 의심과 후회와 여러 존재에 대한 갈애에서 벗어난 바라문에게 지각이 잠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벗이여”가 답의 시작과 끝에 두 번 놓여, 이 짧은 답이 뒤에 수행자들이 다시 묻고 마하깟짜나가 풀어낼 핵심 요약이 됩니다.
묵상
가르침을 묻는 말에 이름 대신 “누구와도 다투지 않는다”는 작용으로 답하는 대목은 어떻게 들리나요? 지금 옳음을 밝히려는 마음과 다툼을 만들지 않으려는 마음이 함께 있는지, 없다면 없다고 보아도 괜찮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