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수행자가 다툼 없는 가르침과 인식에 관해 되묻다

한 비구가 누구와도 다투지 않는 교설이 무엇인지, 갈애를 벗어난 세존께 어떻게 지각들이 잠재하지 않는지를 차례로 여쭙습니다.

이 말을 듣고 한 비구가 세존께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어떤 교설을 말씀하시기에 신과 마라와 범천, 수행자와 바라문, 신과 인간이 있는 세상에서 누구와도 다투지 않으십니까? 세존이시여, 감각적 욕망에서 떨어져 머무시고 의심이 없고 후회를 끊었으며, 여러 존재에 대한 갈애를 벗어난 바라문이신 세존께 어떻게 인식들이 잠재하지 않습니까?”

“kiṁvādī pana, bhante, bhagavā sadevake loke samārake sabrahmake sassamaṇabrāhmaṇiyā pajāya sadevamanussāya na kenaci loke viggayha tiṭṭhati? Kathañca pana, bhante, bhagavantaṁ kāmehi visaṁyuttaṁ viharantaṁ taṁ brāhmaṇaṁ akathaṅkathiṁ chinnakukkuccaṁ bhavābhave vītataṇhaṁ saññā nānusentī”ti?

맛지마 니까야 MN 18 꿀덩어리경 (Madhupiṇḍikasutta)

배경

세존의 보고를 들은 한 비구가 화자로 나서 두 질문을 차례로 올립니다. 첫째는 신·마라·범천과 사문·바라문, 신·인간이 있는 세상에서 누구와도 다투지 않는 교설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둘째는 감각적 쾌락과 의심과 후회와 여러 존재에 대한 갈애를 벗어난 세존께 어떻게 지각들이 잠재하지 않는지 묻습니다. 두 물음 모두 “세존이시여”로 시작하며, 앞서 세존이 단다빠니에게 한 짧은 답의 두 축을 같은 순서로 되받습니다.

묵상

한 비구가 세존의 짧은 답에서 두 축을 빠뜨리지 않고 차례로 되묻는 장면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이해했다고 서두르지 않고, 지금 더 분명히 묻고 싶은 한 가지를 말해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