깟짜나 벗이여, 세존께서 떠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생각했습니다. ‘벗들이여, 세존께서는 짧은 요약을 주시고 뜻을 자세히 나누지 않은 채 들어가셨다. “수행자여, 확산된 인식과 관념이 사람을 덮치는 근원에서 기뻐할 것도 환영할 것도 붙들 것도 없다면, 그것이 탐욕의 잠재 성향이 끝나는 곳이며 … 나쁘고 불선한 것들이 남김없이 소멸하는 곳이다.” 이 요약의 뜻을 누가 자세히 설명할 수 있을까?’
Tesaṁ no, āvuso kaccāna, amhākaṁ acirapakkantassa bhagavato etadahosi: ‘idaṁ kho no, āvuso, bhagavā saṅkhittena uddesaṁ uddisitvā vitthārena atthaṁ avibhajitvā uṭṭhāyāsanā vihāraṁ paviṭṭho: “yatonidānaṁ, bhikkhu, purisaṁ papañcasaññāsaṅkhā samudācaranti. Ettha ce natthi abhinanditabbaṁ abhivaditabbaṁ ajjhositabbaṁ. Esevanto rāgānusayānaṁ …pe… etthete pāpakā akusalā dhammā aparisesā nirujjhantī”’ti. Ko nu kho imassa bhagavatā saṅkhittena uddesassa uddiṭṭhassa vitthārena atthaṁ avibhattassa vitthārena atthaṁ vibhajeyyāti?
맛지마 니까야 MN 18 꿀덩어리경 (Madhupiṇḍikasutta)배경
수행자들의 보고 안에는 두 층의 과거 발화가 들어 있습니다. 현재 청자는 마하깟짜나이므로 “깟짜나 벗이여”라고 부르고, 그들이 당시 서로 나눈 생각 안에서는 “벗들이여”가 나옵니다. 그 안에 다시 세존의 “수행자여”라는 짧은 요약과 공식 “…pe…” 한 번이 인용됩니다. 세 호격의 청자를 구분해야 누가 누구에게 말했는지가 뒤섞이지 않습니다. 마지막에는 뜻을 자세히 설명할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던 질문까지 이르러, 선택 과정의 보고를 완성합니다.
묵상
한 말 안에 여러 화자의 말이 겹쳐 있을 때 누구의 목소리인지 따라가 보는 일은 어떤가요? 지금 기억하는 대화 하나에서 내가 들은 말과 내가 덧붙인 생각을 구분해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