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들이여, 심재가 필요한 사람이 심재를 찾아다니다가 심재 있는 큰 나무를 만났다고 합시다. 그가 뿌리와 줄기를 지나쳐 가지와 잎에서 심재를 찾아야 한다고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존자들께서는 스승을 직접 뵙고도 세존을 지나쳐 이 뜻을 나에게 물어야 한다고 여기십니다.”
“Seyyathāpi, āvuso,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ṁ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atikkammeva mūlaṁ, atikkamma khandhaṁ, sākhāpalāse sāraṁ pariyesitabbaṁ maññeyya; evaṁsampadamidaṁ āyasmantānaṁ satthari sammukhībhūte, taṁ bhagavantaṁ atisitvā, amhe etamatthaṁ paṭipucchitabbaṁ maññatha.
맛지마 니까야 MN 18 꿀덩어리경 (Madhupiṇḍikasutta)배경
마하깟짜나의 첫 답은 해설이 아니라 질문할 대상을 바로잡는 심재 비유입니다. 심재를 찾는 사람, 심재 있는 큰 나무, 지나친 뿌리와 줄기, 잘못 찾는 가지와 잎이 순서대로 나옵니다. 적용에서는 세존을 뿌리나 줄기라고 직접 등치하지 않고, 스승을 직접 뵙고도 지나쳐 자신에게 묻는 상황이 그와 같다고 말합니다. 이 비유는 마하깟짜나가 설명을 거부한다는 뜻이 아니라, 해설의 권위가 세존의 말씀 아래 있음을 먼저 분명히 하는 역할을 합니다.
묵상
심재를 찾으면서 뿌리와 줄기를 지나친다는 비유에서 무엇이 먼저 떠오르나요? 답을 찾는 동안 가까이에 있는 더 직접적인 근거를 지나친 적이 있는지, 없다면 없다고 보아도 괜찮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