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들이여, 세존께서는 아는 것을 알고 보는 것을 보시며, 보는 눈이요 앎이며, 가르침의 구현이요 숭고함의 구현인 분입니다. 말씀하는 이, 펼치는 이, 뜻을 이끌어 내는 이, 죽지 않음을 주는 이, 가르침의 주인인 여래입니다. 바로 그때 세존께 이 뜻을 물었어야 합니다. 세존께서 답하신 그대로 기억했어야 합니다.”
So hāvuso, bhagavā jānaṁ jānāti, passaṁ passati, cakkhubhūto ñāṇabhūto dhammabhūto brahmabhūto, vattā pavattā, atthassa ninnetā, amatassa dātā, dhammassāmī tathāgato. So ceva panetassa kālo ahosi, yaṁ bhagavantaṁyeva etamatthaṁ paṭipuccheyyātha. Yathā vo bhagavā byākareyya tathā naṁ dhāreyyāthā”ti.
맛지마 니까야 MN 18 꿀덩어리경 (Madhupiṇḍikasutta)배경
심재 비유 뒤 마하깟짜나는 세존의 자격을 열거합니다. 알고 봄에 이어 보는 눈·앎·가르침의 구현·숭고함의 구현이라는 네 표현, 말씀함·펼침·뜻을 이끎·죽지 않음을 줌·가르침의 주인이라는 다섯 역할, 마지막 여래가 차례로 나옵니다. 이 목록은 자신이 아니라 세존께 물었어야 할 근거입니다. 결론도 두 단계로, 그때 직접 물었어야 하고 세존의 답 그대로 기억했어야 한다고 말해 해설의 기준을 원설자에게 돌려놓습니다.
묵상
설명하는 이가 먼저 자신보다 원래 가르친 이를 가리키는 태도는 어떻게 다가오나요? 내가 아는 것을 전할 때 어디까지 들은 것이고 어디부터 내 설명인지 한 번 차분히 밝힐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