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신 뒤, 선서이신 스승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느니라.
아라한들은 참으로 행복하나니,
그들에게 갈애는 없느니라.
‘나는 있다’라는 자만은 완전히 잘렸고,
어리석음의 그물은 찢어졌느니라.
Idamavoca bhagavā. Idaṁ vatvāna sugato athāparaṁ etadavoca satthā: “Sukhino vata arahanto, taṇhā tesaṁ na vijjati; Asmimāno samucchinno, mohajālaṁ padālitaṁ.
상윳따 니까야 SN 22.76 아라한경 (Arahantasutta) 배경
산문 설법이 끝난 뒤 서술자는 세존께서 이어 게송을 말씀하신다고 화자를 다시 밝힙니다. 여덟 게송 가운데 첫 연은 아라한의 행복을 세 가지 벗어남과 연결합니다. 갈애는 없고, “나는 있다”라는 자만은 완전히 잘렸으며, 미혹의 그물은 찢어졌습니다. taṇhā·asmimāna·mohajāla가 욕구·자기 동일시·그릇된 앎의 세 방향을 이루고, 첫 행의 행복은 그 제거의 결과로 놓입니다. 무엇을 더 소유해서 얻는 행복보다 붙잡고 재고 흐리게 하던 조건이 사라진 자유를 찬탄하는 구조입니다.
묵상
무언가를 더 얻어서 편해진 때와 붙잡던 생각 하나가 느슨해져 편해진 때는 어떻게 달랐나요? 갈애·“나는 있다”라는 자만·미혹의 그물 가운데 지금 경험과 가장 가까이 들리는 말이 있나요? 어느 것도 고를 수 없거나 지금은 지나가도 괜찮아요.
수행자들이여, 이러한 수행자를 일컬어
‘빗장을 뽑아 버린 자’라 하고,
‘해자를 메워 버린 자’라 하고,
‘기둥을 뽑아 버린 자’라 하고,
‘가로막대가 없는 자’라 하며,
‘깃발을 내리고 짐을 내려놓아
매임에서 풀려난 성스러운 이’라 하느니라.
Ayaṁ vuccati, bhikkhave, bhikkhu ukkhittapaligho itipi, saṅkiṇṇaparikkho itipi, abbūḷhesiko itipi, niraggaḷo itipi, ariyo pannaddhajo pannabhāro visaṁyutto itipi.
맛지마 니까야 MN 22 뱀의 비유경 (Alagaddūpamasutta) 배경
다섯 개의 이름이 모두 성벽 이미지입니다. 뽑고, 메우고, 무너뜨리고, 열어젖히는 그림입니다. 부처님은 곧이어 이 이름들이 각각 무엇을 가리키는지 하나씩 풀어 주십니다. 빗장을 뽑았다는 것은 무명을 버렸다는 뜻이고, 해자를 메웠다는 것은 다시 태어남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버렸다는 뜻이며, 기둥을 뽑았다는 것은 갈애를 버렸다는 뜻이고, 가로막대가 없다는 것은 아래로 묶는 다섯 족쇄를 버렸다는 뜻이며, 깃발을 내리고 짐을 내려놓았다는 것은 "나는 있다"는 자만을 버렸다는 뜻입니다. 성 안에 갇혀 있던 사람이 성을 부수고 나온 것이 아니라, 성 자체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묵상
당신이 지금 지키고 있는 성벽 하나를 떠올린다면, 그것은 무엇으로부터 당신을 지켜 주면서 동시에 무엇으로부터 당신을 가두고 있을까요?
길을 다 간 이, 슬픔이 없는 이,
모든 곳에서 온전히 풀려난 이,
모든 매듭을 버린 이에게는
타는 열기가 없느니라.
Gataddhino visokassa, vippamuttassa sabbadhi; Sabbaganthappahīnassa, pariḷāho na vijjati.
법구경 Dhammapada 90 아라한의 품 (Arahantavagga) 배경
법구경에서 아라한을 다루는 품의 첫 게송입니다. 여기 쓰인 "빠리라하(pariḷāha)"는 "타는 열기", 곧 몸과 마음이 달아오르는 느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불안할 때 가슴이 뜨거워지고, 억울할 때 얼굴이 달아오르고, 무언가를 몹시 원할 때 속이 타들어 가는 그 감각입니다. 이 게송은 열반을 거창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 열기가 없다고만 말합니다. "길을 다 간 이"라는 첫 구절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아직 가고 있는 사람에게는 도착해야 한다는 열기가 남아 있습니다.
묵상
최근에 속이 타올랐던 순간을 하나 떠올린다면, 그때 당신은 무엇을 꼭 쥐고 있었을까요?
마을이든 숲이든,
낮은 땅이든 높은 땅이든,
아라한들이 머무는 그곳이
곧 즐거운 땅이니라.
Gāme vā yadi vāraññe, Ninne vā yadi vā thale; Yattha arahanto viharanti, Taṁ bhūmirāmaṇeyyakaṁ.
법구경 Dhammapada 98 아라한의 품 (Arahantavagga) 배경
자유를 장소의 문제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여기만 벗어나면, 이 일만 그만두면, 조용한 데로 가기만 하면 괜찮아질 것 같습니다. 이 게송은 그 순서를 뒤집습니다. "아라한들이 머무는 그곳이 곧 즐거운 땅"이라는 말은, 좋은 땅이 있어서 사람이 편안해지는 것이 아니라 편안한 사람이 있는 곳이 좋은 땅이 된다는 뜻입니다. 부처님의 제자들이 숲에도 살고 마을에도 살았다는 사실이 이 게송의 배경입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는 말은 어느 쪽도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라, 자유가 바깥 조건에 매여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묵상
"여기만 벗어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리가 지금 있나요? 그 생각이 실제로 맞았던 적은 얼마나 있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