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습니다, 아난다여. 그대는 이를 잘 듣고 잘 받아들이고 마음에 잘 새기고 잘 간직했느니라. 아난다여, 예전에도 지금도 나는 공에 머무는 삶을 많이 닦느니라. 아난다여, 이 미가라마따 강당은 코끼리·소·말·암말이 없어 비었고, 금·은이 없어 비었으며, 남녀의 모임이 없어 비었지만 비지 않은 것이 있으니, 수행자 승가에 의지한 하나됨이니라.”
“Taggha te etaṁ, ānanda, sussutaṁ suggahitaṁ sumanasikataṁ sūpadhāritaṁ. Pubbepāhaṁ, ānanda, etarahipi suññatāvihārena bahulaṁ viharāmi. Seyyathāpi, ānanda, ayaṁ migāramātupāsādo suñño hatthigavassavaḷavena, suñño jātarūparajatena, suñño itthipurisasannipātena atthi cevidaṁ asuññataṁ yadidaṁ—bhikkhusaṅghaṁ paṭicca ekattaṁ;
맛지마 니까야 MN 121 공에 대한 짧은 경 (Cūḷasuññatasutta)배경
세존께서는 아난다가 말한 네 가지 확인을 같은 네 동사로 인정하고, 예전에도 지금도 공에 많이 머문다고 밝히십니다. 이어 실제 강당을 들어 세 부류, 곧 코끼리·소·말·암말, 금·은, 남녀의 모임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강당이 절대적인 무라는 뜻은 아닙니다. 수행자 승가에 의지한 하나됨은 남아 있습니다. “아난다여” 세 번이 답·시간의 연속·비유의 도입을 각각 열며, 공을 없음과 남아 있음의 정확한 대조로 읽게 합니다.
묵상
강당이 여러 무리와 물건은 없어 비었지만 수행자 승가에 의지한 하나됨은 남았다는 말이 어떻게 들리나요? 지금 공간에서 없는 것과 남아 있는 것을 하나씩 구별해 볼 수 있을까요, 둘 다 바로 보이지 않아도 괜찮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