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숲의 동요는 없고 땅의 하나됨만 남다

사람과 숲의 인식에 따른 동요가 없음을 알고, 땅의 인식에 의지한 하나됨에 따른 동요만 남았다고 봅니다.

“그는 이렇게 압니다. ‘사람의 인식에 의지한 동요는 여기에 없습니다. 숲의 인식에 의지한 동요도 여기에 없습니다. 다만 땅의 인식에 의지한 하나됨이라는 이 정도 동요만 있습니다.’”

So evaṁ pajānāti: ‘ye assu darathā manussasaññaṁ paṭicca tedha na santi, ye assu darathā araññasaññaṁ paṭicca tedha na santi, atthi cevāyaṁ darathamattā yadidaṁ—pathavīsaññaṁ paṭicca ekattan’ti.

맛지마 니까야 MN 121 공에 대한 짧은 경 (Cūḷasuññatasutta)

배경

땅 인식에 마음이 두 번 확고해진 뒤 동요를 대조합니다. 사람 인식과 숲 인식에 따른 두 동요는 없고, 현재 의지하는 땅 인식의 하나됨에 따른 정도만 남습니다. 앞의 숲 단계에서는 마을과 사람이 비워졌지만 이제 사람과 숲이 비워져, 각 단계가 바로 앞 두 범위를 차례로 넘는 구조가 드러납니다. 남은 동요를 숨기지 않는 문장은 더 넓은 집중 상태도 아직 조건 지어진 하나됨임을 알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합니다.

묵상

앞 단계의 숲 인식도 이제 비워지고 땅의 하나됨만 남는다는 이동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익숙한 고요를 다음 순간에도 붙잡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그것을 지금 작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