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 인식의 장은 무한한 의식의 영역 인식이 없어 비었다.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 인식이 없어 비었다. 비지 않은 것은 인식도 비인식도 아닌 영역 인식에 의지한 하나됨이다’라고 아느니라. 거기 없는 것으로 그곳이 비었다고 보고, 남아 있는 것은 ‘이것은 있다’고 아느니라. 아난다여, 이것이 있는 그대로이고 뒤집히지 않았으며 청정한 공의 들어섬이니라.”
So ‘suññamidaṁ saññāgataṁ viññāṇañcāyatanasaññāyā’ti pajānāti, ‘suññamidaṁ saññāgataṁ ākiñcaññāyatanasaññāyā’ti pajānāti, ‘atthi cevidaṁ asuññataṁ yadidaṁ—nevasaññānāsaññāyatanasaññaṁ paṭicca ekattan’ti. Iti yañhi kho tattha na hoti tena taṁ suññaṁ samanupassati, yaṁ pana tattha avasiṭṭhaṁ hoti taṁ ‘santamidaṁ atthī’ti pajānāti. Evampissa esā, ānanda, yathābhuccā avipallatthā parisuddhā suññatāvakkanti bhavati.
맛지마 니까야 MN 121 공에 대한 짧은 경 (Cūḷasuññatasutta)배경
이 단계의 두 부정은 무한한 의식과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 인식에 향하고, 한 긍정은 인식도 비인식도 아닌 영역의 하나됨에 향합니다. 미세한 명칭 때문에 남은 것이 없는 듯 보여도 원문은 그것을 “비지 않은 것”이라고 분명히 둡니다. 이어 없는 것과 남은 것을 함께 아는 원리, 있는 그대로이고 뒤집히지 않은 청정한 공이 반복됩니다. 수행은 점점 미세해지는 인식을 최종 실체로 삼지 않고, 각 상태가 무엇을 비우고 무엇에 의지하는지 끝까지 구분합니다.
묵상
아주 미세한 상태에서도 비지 않은 것이 남는다는 반복이 어떤 의미로 읽히나요? 경험을 이름 붙이기 어렵더라도, 지금 실제로 남아 있는 것을 억지로 없다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대로 두어도 괜찮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