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징을 붙잡지 않는 고요에도 몸의 여섯 감각은 남는다

두 미세한 영역 인식은 비었지만 생명을 조건으로 몸에 의지한 여섯 감각은 남았다고 알아 청정한 공을 확인합니다.

“그는 ‘이 인식의 장은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 인식이 없어 비었다. 인식도 비인식도 아닌 영역 인식이 없어 비었다. 비지 않은 것은 이 몸에 의지하고 생명을 조건으로 하는 여섯 감각과 관련된 것이다’라고 아느니라. 거기 없는 것으로 그곳이 비었다고 보고, 남아 있는 것은 ‘이것은 있다’고 아느니라. 아난다여, 이것이 있는 그대로이고 뒤집히지 않았으며 청정한 공의 들어섬이니라.”

So ‘suññamidaṁ saññāgataṁ ākiñcaññāyatanasaññāyā’ti pajānāti, ‘suññamidaṁ saññāgataṁ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saññāyā’ti pajānāti, ‘atthi cevidaṁ asuññataṁ yadidaṁ—imameva kāyaṁ paṭicca saḷāyatanikaṁ jīvitapaccayā’ti. Iti yañhi kho tattha na hoti tena taṁ suññaṁ samanupassati, yaṁ pana tattha avasiṭṭhaṁ hoti taṁ ‘santamidaṁ atthī’ti pajānāti. Evampissa esā, ānanda, yathābhuccā avipallatthā parisuddhā suññatāvakkanti bhavati.

맛지마 니까야 MN 121 공에 대한 짧은 경 (Cūḷasuññatasutta)

배경

표상 없는 삼매의 첫 판정에서는 아무것도 없음과 인식도 비인식도 아닌 영역 인식이 각각 없어 비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생명을 조건으로 이 몸에 의지한 여섯 감각과 관련된 것은 남아 있습니다. 앞 단계들이 새 인식의 하나됨을 잔여로 삼은 것과 다른 지점입니다. 부재와 잔여를 함께 아는 원리와 청정한 공의 들어섬은 그대로 반복됩니다. 수행은 고요를 몸 바깥의 절대 상태로 만들지 않고, 생명과 감각이라는 현재 조건을 사실대로 남겨 둡니다.

묵상

두 미세한 인식은 비어도 살아 있는 몸의 여섯 감각은 남는다는 구별이 어떻게 다가오나요? 고요 속에서도 몸을 지우지 않고 한 감각을 바로 지금 천천히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