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흘러들어 괴롭히는 세 가지에서 풀려났음을 알다

이처럼 알고 보는 이의 마음이 감각적 욕망·존재·무명의 세 번뇌에서 풀리고, 해탈과 삶의 과업 완성을 직접 압니다.

“이처럼 알고 이처럼 보는 이의 마음은 감각적 욕망의 번뇌에서 풀리고, 마음은 존재의 번뇌에서 풀리며, 마음은 무명의 번뇌에서 풀립니다. 풀렸을 때 ‘풀렸다’는 앎이 있습니다. 그는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했으며, 할 일을 마쳤고, 다시 이런 상태로 오는 일은 없다’고 압니다.”

Tassa evaṁ jānato evaṁ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ṁ vimuccati, bhavāsavāpi cittaṁ vimuccati, avijjāsavāpi cittaṁ vimuccati. Vimuttasmiṁ vimuttamiti ñāṇaṁ hoti.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pajānāti.

맛지마 니까야 MN 121 공에 대한 짧은 경 (Cūḷasuññatasutta)

배경

표상 없는 삼매의 무상과 소멸을 안 결과, 마음은 감각적 욕망·존재·무명이라는 세 번뇌에서 각각 풀립니다. 이어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고 아는 지식이 나오고, 태어남의 끝·청정한 삶의 완성·할 일의 마침·다시 이런 상태로 오지 않음이라는 네 선언이 뒤따릅니다. 이는 앞 단계의 집중을 오래 유지하는 성취가 아니라, 그 집중조차 조건 지어져 사라짐을 보아 세 번뇌에서 벗어난 결과입니다. 해탈과 그 앎을 구분해 순서대로 말합니다.

묵상

세 번뇌에서 풀림과 “풀렸다”는 앎이 따로 이어지는 순서는 어떻게 다가오나요? 자신의 성취를 판정하지 않고, 지금 잠시 놓였다고 느끼는 아주 작은 부담 하나만 천천히 떠올려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