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렇게 압니다. ‘감각적 욕망의 번뇌에 의지한 동요는 여기에 없습니다. 존재의 번뇌에 의지한 동요도 여기에 없습니다. 무명의 번뇌에 의지한 동요도 여기에 없습니다. 다만 이 몸에 의지하고 생명을 조건으로 하는 여섯 감각과 관련된 이 정도 동요만 있습니다.’”
So evaṁ pajānāti: ‘ye assu darathā kāmāsavaṁ paṭicca tedha na santi, ye assu darathā bhavāsavaṁ paṭicca tedha na santi, ye assu darathā avijjāsavaṁ paṭicca tedha na santi, atthi cevāyaṁ darathamattā yadidaṁ—imameva kāyaṁ paṭicca saḷāyatanikaṁ jīvitapaccayā’ti.
맛지마 니까야 MN 121 공에 대한 짧은 경 (Cūḷasuññatasutta)배경
해탈 선언 뒤 다시 동요의 부재와 잔여를 점검합니다. 이번에는 감각적 욕망·존재·무명의 세 번뇌에 의지한 동요가 없다고 세 항목을 열거합니다. 남은 것은 앞의 표상 없는 삼매 단계와 마찬가지로, 생명을 조건으로 몸에 의지한 여섯 감각과 관련된 정도입니다. 번뇌에서 풀렸다는 사실이 살아 있는 몸의 모든 감각 조건이 사라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공의 최종 판정도 없어진 세 번뇌와 남아 있는 몸의 조건을 혼동하지 않는 정확성 위에 놓입니다.
묵상
세 번뇌의 동요는 없지만 생명에 의존한 몸의 감각 조건은 남는다는 구별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자유를 몸의 감각이 전혀 없는 상태로 서둘러 상상하지 않고 문장 그대로 볼 여지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