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미래·현재의 위없는 공은 모두 이와 같다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청정하고 위없는 공에 들어 머문 모든 사문과 바라문이 바로 이 공에 들었다고 세 시제로 반복합니다.

“아난다여, 과거에 어떤 수행자나 바라문이 청정하고 위없는 공에 들어 머물렀다면, 모두 바로 이 청정하고 위없는 공에 들어 머물렀느니라. 아난다여, 미래에 어떤 수행자나 바라문이 청정하고 위없는 공에 들어 머문다면, 모두 바로 이 청정하고 위없는 공에 들어 머물 것이니라. 아난다여, 지금 어떤 수행자나 바라문이 청정하고 위없는 공에 들어 머문다면, 모두 바로 이 청정하고 위없는 공에 들어 머무느니라.”

Yepi hi keci, ānanda, atītamaddhānaṁ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parisuddhaṁ paramānuttaraṁ suññataṁ upasampajja vihariṁsu, sabbe te imaṁyeva parisuddhaṁ paramānuttaraṁ suññataṁ upasampajja vihariṁsu. Yepi hi keci, ānanda, anāgatamaddhānaṁ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parisuddhaṁ paramānuttaraṁ suññataṁ upasampajja viharissanti, sabbe te imaṁyeva parisuddhaṁ paramānuttaraṁ suññataṁ upasampajja viharissanti. Yepi hi keci, ānanda, etarah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parisuddhaṁ paramānuttaraṁ suññataṁ upasampajja viharanti, sabbe te imaṁyeva parisuddhaṁ paramānuttaraṁ suññataṁ upasampajja viharanti.

맛지마 니까야 MN 121 공에 대한 짧은 경 (Cūḷasuññatasutta)

배경

세존께서는 완성된 공을 과거·미래·현재의 세 시제로 각각 반복합니다. 주체는 매번 사문이나 바라문이며, 들어 머무는 대상은 청정하고 위없는 공입니다. 과거에는 머물렀고, 미래에는 머물 것이며, 현재에는 머문다는 서술어의 시제도 달라집니다. “아난다여”는 각 문장에 한 번씩 모두 세 번입니다. 이 반복은 시대마다 다른 공을 설정하지 않고, 번뇌가 비고 몸의 조건은 남는 바로 앞의 판정을 세 시대 모든 수행자의 같은 위없는 들어섬으로 확정합니다.

묵상

과거·미래·현재의 세 시제로 같은 공을 반복하는 결론은 어떻게 들리나요? 먼 시대의 성취를 상상하기보다, 지금 문장에서 세 시제와 서술어의 작은 차이만 아주 차분히 따라가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