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여정 - 스승이 걸은 마지막 길

여든의 노스승이 병든 몸으로 걸어간 마지막 몇 달의 기록

‘벗 춘다여, 그대에게 이득이요 그대에게 큰 행운이니, 여래께서 그대의 마지막 탁발 음식을 드시고 완전한 열반에 드셨기 때문이니라. … 두 가지 탁발 음식은 똑같은 과보와 똑같은 결실을 가지며, 다른 어떤 탁발 음식보다 훨씬 큰 과보와 훨씬 큰 이익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둘인가? 여래가 그것을 들고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탁발 음식과, 여래가 그것을 들고 남김 없는 열반의 요소로 완전한 열반에 드는 탁발 음식이니라.’

‘Tassa te, āvuso cunda, lābhā tassa te suladdhaṁ, yassa te tathāgato pacchimaṁ piṇḍapātaṁ paribhuñjitvā parinibbuto … dveme piṇḍapātā samasamaphalā samavipākā, ativiya aññehi piṇḍapātehi mahapphalatarā ca mahānisaṁsatarā ca. Katame dve? Yañca piṇḍapātaṁ paribhuñjitvā tathāgato anuttaraṁ sammāsambodhiṁ abhisambujjhati, yañca piṇḍapātaṁ paribhuñjitvā tathāgato anupādisesāya nibbānadhātuyā parinibbāyati.’

디가 니까야 DN 16 대반열반경 (Mahāparinibbānasutta)

배경

대장장이의 아들 춘다가 정성껏 차린 공양을 드신 뒤, 부처님은 피가 섞인 심한 병을 얻으셨습니다. 그 병중에 부처님이 먼저 걱정하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춘다였습니다. "누군가 춘다에게 후회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그대 때문에 여래께서 돌아가셨다'고." 그래서 아난다에게 미리 이렇게 말해 주라고 당부하십니다. 깨달음 직전에 받은 공양과 열반 직전에 받은 공양은 똑같은 과보를 가진다고. 한 사람이 평생 죄책감에 눌려 살지 않도록, 죽어가는 사람이 마지막 힘으로 변호를 준비해 둔 것입니다. 이 대목은 부처님의 자비가 추상적인 감정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배려였음을 보여줍니다.

묵상

누군가의 호의가 나쁜 결과로 이어졌을 때, 당신은 그 사람의 마음까지 지켜준 적이 있나요? 결과만 보고 사람을 탓하기 전에, 그가 무엇을 주려 했는지를 먼저 볼 수 있을까요?

‘아난다여, 가자. 히란냐와띠 강 저편 언덕, 말라들의 살나무 숲으로 가자꾸나.’ … ‘아난다여, 부디 두 그루 살나무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두고 자리를 펴다오. 아난다여, 나는 피곤하구나. 누워야겠다.’ 그리하여 세존께서는 오른쪽 옆구리를 대고 발 위에 발을 포갠 채,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사자처럼 누우셨느니라.

‘Āyāmānanda, yena hiraññavatiyā nadiyā pārimaṁ tīraṁ, yena kusinārā upavattanaṁ mallānaṁ sālavanaṁ tenupasaṅkamissāmā’ti … ‘Iṅgha me tvaṁ, ānanda, antarena yamakasālānaṁ uttarasīsakaṁ mañcakaṁ paññapehi, kilantosmi, ānanda, nipajjissāmī’ti … Atha kho bhagavā dakkhiṇena passena sīhaseyyaṁ kappesi pāde pādaṁ accādhāya sato sampajāno.

디가 니까야 DN 16 대반열반경 (Mahāparinibbānasutta)

배경

심한 병을 앓은 뒤에도 부처님은 걸으셨습니다. 강을 건너고 숲을 지나 마지막 목적지에 도착하셨습니다. 그곳은 큰 도시가 아니라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도착해서 하신 말씀은 유언도 예언도 아니었습니다. "나는 피곤하구나. 누워야겠다." 여든 살 노인의 지극히 평범한 문장입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눕고 발을 포갠 자세 - 이것이 훗날 수많은 조각으로 남은 그 모습입니다. 다만 경전은 자세보다 두 단어를 더 강조합니다.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몸은 지쳐 누웠지만 마음은 마지막까지 깨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묵상

지쳤다고 솔직히 말하고 누울 수 있나요? 몸이 쉬는 동안에도 마음이 깨어 있는 상태와, 몸도 마음도 그냥 무너지는 상태는 당신에게 어떻게 다른가요?

‘아난다여, 그만하여라. 슬퍼하지 말고 울부짖지 말라. 아난다여, 내가 이미 말하지 않았더냐.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헤어지고 갈라지고 달라지게 마련이라고. 아난다여,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느냐. 태어나고 생겨나고 조건 지어져 무너지게 마련인 것을 두고 ‘여래의 몸이라 하여 무너지지 말라’ 함은 있을 수 없느니라. 아난다여, 그대는 오랫동안 자애로운 몸의 행위와 자애로운 말의 행위와 자애로운 마음의 행위로 여래를 섬겨왔으니, 이롭고 즐겁고 한결같고 한량없었느니라. 아난다여, 그대는 공덕을 지었느니라. 정진에 힘쓰라. 그대는 오래지 않아 번뇌 없는 이가 되리라.’

‘Alaṁ, ānanda, mā soci mā paridevi, nanu etaṁ, ānanda, mayā paṭikacceva akkhātaṁ: “sabbeheva piyehi manāpehi nānābhāvo vinābhāvo aññathābhāvo”; Taṁ kutettha, ānanda, labbhā. Yaṁ taṁ jātaṁ bhūtaṁ saṅkhataṁ palokadhammaṁ, “taṁ vata tathāgatassāpi sarīraṁ mā palujjī”ti netaṁ ṭhānaṁ vijjati. Dīgharattaṁ kho te, ānanda, tathāgato paccupaṭṭhito mettena kāyakammena hitena sukhena advayena appamāṇena, mettena vacīkammena … mettena manokammena … Katapuññosi tvaṁ, ānanda, padhānamanuyuñja, khippaṁ hohisi anāsavo’ti.

디가 니까야 DN 16 대반열반경 (Mahāparinibbānasutta)

배경

스승의 마지막을 지킨 시자 아난다는 그 자리를 견디지 못하고 자리를 떠나 문설주에 기대어 울었습니다. 경전은 그가 울며 한 말까지 그대로 적어 두었습니다. "나는 아직 배울 것이 남은 사람인데, 나를 아껴주시던 스승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시는구나." 부처님은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를 주십니다. 먼저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모든 것과는 헤어지게 되어 있고, 여래의 몸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 그다음은 인정입니다. "그대는 오랫동안 자애로운 몸과 말과 마음의 행위로 여래를 섬겨왔느니라." 위로가 슬픔을 부정하는 대신, 그 사람이 해온 일을 정확히 알아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묵상

슬퍼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무엇을 건네나요? 울지 말라는 말보다, 그 사람이 지금까지 해온 일을 정확히 알아주는 말이 더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요?

‘수밧다여, 어떤 가르침과 규범에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이 없으면 거기에는 수행자가 없고, 둘째 수행자도 없고, 셋째 수행자도 없고, 넷째 수행자도 없느니라. 수밧다여, 어떤 가르침과 규범에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이 있으면 거기에는 수행자가 있고, 둘째 수행자도 있고, 셋째 수행자도 있고, 넷째 수행자도 있느니라. … 수밧다여, 이 수행자들이 바르게 머문다면 세상에 아라한이 비지 않으리라.’

‘Yasmiṁ kho, subhadda, dhammavinaye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na upalabbhati, samaṇopi tattha na upalabbhati. Dutiyopi tattha samaṇo na upalabbhati. Tatiyopi tattha samaṇo na upalabbhati. Catutthopi tattha samaṇo na upalabbhati. Yasmiñca kho, subhadda, dhammavinaye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upalabbhati, samaṇopi tattha upalabbhati, dutiyopi tattha samaṇo upalabbhati, tatiyopi tattha samaṇo upalabbhati, catutthopi tattha samaṇo upalabbhati … Ime ca, subhadda, bhikkhū sammā vihareyyuṁ, asuñño loko arahantehi assā’ti.

디가 니까야 DN 16 대반열반경 (Mahāparinibbānasutta)

배경

그 밤에 유행자 수밧다가 찾아왔습니다. 아난다는 세 번이나 막았습니다. "그만하시오, 세존께서는 피곤하십니다." 그 대화를 들으신 부처님이 말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무엇을 묻든 나를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알고자 하는 것이니라." 죽음을 몇 시간 앞둔 사람이 낯선 방문자에게 문을 연 것입니다. 수밧다가 물은 것은 "당대의 여러 스승들 가운데 누가 진짜인가"였습니다. 부처님은 그 비교에 답하지 않으시고 기준을 바꾸셨습니다. 사람을 세지 말고 길이 있는지를 보라는 것입니다.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이 있느냐 없느냐. 수밧다는 그 자리에서 제자가 되었고, 부처님 생전의 마지막 제자가 되었습니다.

묵상

누가 옳은 스승인지 판단할 때 당신은 무엇을 보나요? 사람의 명성과 규모 대신, 그가 가리키는 길이 실제로 어디로 이어지는지를 먼저 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