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끼야인 마하나마가 세존을 찾아가 절하고 한쪽에 앉아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랫동안 세존께서 가르치신 ‘탐욕은 마음의 오염이고 성냄은 마음의 오염이며 어리석음은 마음의 오염입니다’라는 것을 알아왔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가르침을 그렇게 압니다. ‘탐욕은 마음의 오염이고 성냄은 마음의 오염이며 어리석음은 마음의 오염입니다.’ 그런데도 때로 탐욕·성냄·어리석음이 제 마음을 압도합니다.”
Atha kho mahānāmo sakk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mahānāmo sakko bhagavantaṁ etadavoca: “dīgharattāhaṁ, bhante, bhagavatā evaṁ dhammaṁ desitaṁ ājānāmi: ‘lobho cittassa upakkileso, doso cittassa upakkileso, moho cittassa upakkileso’ti. Evañcāhaṁ, bhante, bhagavatā dhammaṁ desitaṁ ājānāmi: ‘lobho cittassa upakkileso, doso cittassa upakkileso, moho cittassa upakkileso’ti. Atha ca pana me ekadā lobhadhammāpi cittaṁ pariyādāya tiṭṭhanti, dosadhammāpi cittaṁ pariyādāya tiṭṭhanti, mohadhammāpi cittaṁ pariyādāya tiṭṭhanti.
맛지마 니까야 MN 14 소고행집경 (Cūḷadukkhakkhandhasutta)배경
사끼야인 마하나마는 세존을 찾아가 절하고 한쪽에 앉아 자신의 경험을 말씀드립니다. 그는 탐욕·성냄·어리석음이 마음을 흐리게 한다는 가르침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 가르침을 두 번 되풀이하여 자신의 이해가 분명함을 보인 뒤, 그런데도 세 성향이 때로 마음을 압도한다고 고백합니다. 이 대목은 지식이 없어서 생긴 문제라고 단정하지 않고, 이해와 실제 마음의 움직임 사이에 남은 간격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 간격에서 생긴 구체적인 질문은 이어지는 문답에 포함됩니다.
묵상
분명히 아는 원칙과 반대 방향으로 마음이 움직인 경험이 함께 있었나요? 그 간격을 자신을 정죄할 이유로 보는 대신 물음으로 바꾼다면, 생각의 출현 자체와 그 생각을 따라가게 하는 남은 조건 중 어느 쪽이 더 궁금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