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못한 한 속성

세존께서 마하나마의 재가 생활과 감각적 쾌락을 남은 속성의 증거로 짚으십니다.

“세존이시여, 그래서 저는 생각합니다. ‘내 안에 무엇이 버려지지 않아 때로 탐욕·성냄·어리석음이 마음을 압도합니까?’” “마하나마여, 그대 안에 버려지지 않은 바로 그 속성 때문에 탐욕·성냄·어리석음이 마음을 압도합니다. 마하나마여, 그 속성을 버렸다면 그대는 집에 살지도 감각적 욕망을 누리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마하나마여, 그 속성을 버리지 못했기에 집에 살며 감각적 욕망을 누립니다.”

Tassa mayhaṁ, bhante, evaṁ hoti: ‘kosu nāma me dhammo ajjhattaṁ appahīno yena me ekadā lobhadhammāpi cittaṁ pariyādāya tiṭṭhanti, dosadhammāpi cittaṁ pariyādāya tiṭṭhanti, mohadhammāpi cittaṁ pariyādāya tiṭṭhantī’”ti. “So eva kho te, mahānāma, dhammo ajjhattaṁ appahīno yena te ekadā lobhadhammāpi cittaṁ pariyādāya tiṭṭhanti, dosadhammāpi cittaṁ pariyādāya tiṭṭhanti, mohadhammāpi cittaṁ pariyādāya tiṭṭhanti. So ca hi te, mahānāma, dhammo ajjhattaṁ pahīno abhavissa, na tvaṁ agāraṁ ajjhāvaseyyāsi, na kāme paribhuñjeyyāsi. Yasmā ca kho te, mahānāma, so eva dhammo ajjhattaṁ appahīno tasmā tvaṁ agāraṁ ajjhāvasasi, kāme paribhuñjasi.

맛지마 니까야 MN 14 소고행집경 (Cūḷadukkhakkhandhasutta)

배경

마하나마는 자신의 생각을 직접 밝히며, 무엇이 내면에서 버려지지 않아 세 오염이 마음을 압도하는지 묻습니다. 세존은 새로운 속성의 이름을 붙이지 않고 “바로 그 버려지지 않은 속성”이라고 답합니다. 그것이 버려졌다면 집에 머물며 감각적 쾌락을 누리지 않았을 것이고, 남아 있기에 현재의 삶이 계속된다는 조건문입니다. 마하나마의 질문과 세존의 직접 답을 한 문답으로 보존했고, 세존이 마하나마를 세 번 부르는 반복도 그대로 옮겼습니다.

묵상

말로 설명하는 가치와 계속 선택하는 삶의 모양 사이에 어떤 거리가 있나요? 그 거리를 자기비난의 근거가 아니라 아직 놓지 못한 것을 알려 주는 자료로 본다면, 지금 구체적으로 이름 붙일 수 있는 남은 조건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