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나마여, 고귀한 제자가 “감각적 욕망은 즐거움은 적고 괴로움과 고달픔은 많으며 위험이 더 큽니다”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올바른 지혜로 잘 보고, 감각적 욕망과 해로운 상태를 떠난 희열과 행복, 혹은 그보다 더 고요한 상태를 얻으면, 감각적 욕망으로 되돌아가지 않습니다.
Yato ca kho, mahānāma, ariyasāvakassa ‘appassādā kāmā bahudukkhā bahupāyāsā, ādīnavo ettha bhiyyo’ti—evametaṁ yathābhūtaṁ sammappaññāya sudiṭṭhaṁ hoti, so ca aññatreva kāmehi aññatra akusalehi dhammehi pītisukhaṁ adhigacchati aññaṁ vā tato santataraṁ; atha kho so anāvaṭṭī kāmesu hoti.
맛지마 니까야 MN 14 소고행집경 (Cūḷadukkhakkhandhasutta)배경
이제 조건의 나머지 반쪽이 채워집니다. 고귀한 제자가 감각적 쾌락의 적은 즐거움과 큰 위험을 올바로 보는 것에 더해, 감각적 쾌락과 해로운 상태에서 떠난 희열과 행복이나 그보다 더 고요한 경지를 얻습니다. 그럴 때에야 경문은 그가 감각적 쾌락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단순한 절제의 명령이 아니라, 위험을 보는 지혜와 더 나은 행복의 체득이 함께 불회귀의 조건이 됩니다.
묵상
버리고 싶은 즐거움을 반복해 찾는 일을 의지 부족으로만 해석해 왔나요? 그 판단을 잠시 보류한다면, 그것의 위험을 정확히 보는 일과 더 고요한 행복을 직접 배워 가는 일 중 어느 조건을 먼저 확인하고 싶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