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나마여, 그 사람이 일어나 애쓰고 노력해도 재산을 얻지 못하면, 그는 슬퍼하고 시달리며 탄식하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고 혼란에 빠져 “내가 애쓴 일이 헛되었고 내 노력은 결실이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마하나마여, 이것도 감각적 욕망이 원인·기원·소재이며 바로 그 때문에 생기는 현세의 괴로움 덩어리이자 위험입니다.
Tassa ce, mahānāma, kulaputtassa evaṁ uṭṭhahato ghaṭato vāyamato te bhogā nābhinipphajjanti, so socati kilamati paridevati urattāḷiṁ kandati sammohaṁ āpajjati ‘moghaṁ vata me uṭṭhānaṁ, aphalo vata me vāyāmo’ti. Ayampi, mahānāma, kāmānaṁ ādīnavo sandiṭṭhiko dukkhakkhandho kāmahetu kāmanidānaṁ kāmādhikaraṇaṁ kāmānameva hetu.
맛지마 니까야 MN 14 소고행집경 (Cūḷadukkhakkhandhasutta)배경
이 위험은 노동의 고달픔 뒤에 재산이 생기지 않는 경우를 다룹니다. 경문은 일어나고, 애쓰고, 노력하는 세 동작을 모두 언급하여 성실함이 없었던 사례를 말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그럼에도 재산이 생기지 않으면 슬픔·시달림·탄식·가슴을 치며 울부짖음·혼란이 이어지고, 자신이 애쓴 일이 헛되었다는 생각이 남습니다. 세존은 성공 이전의 위험도 감각적 쾌락을 둘러싼 현세의 괴로움으로 포함합니다.
묵상
노력했으면 반드시 결과를 얻어야 한다는 생각이 실패의 아픔에 “모두 헛되었다”는 판단을 더하고 있나요? 노력의 가치와 결과의 성패를 나눠 본다면 어떤 차이가 보이나요? 원하는 것의 만족 뿐 아니라 그 추구에 따르는 위험도 함께 헤아릴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