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나마여, 또 감각적 욕망 때문에 칼과 방패를 들고 활과 화살을 매어, 양쪽 군대가 맞서 화살을 쏘고 창을 던지며 칼날을 번쩍이는 전장으로 뛰어듭니다. 그곳에서 화살과 창에 찔리고 칼에 머리가 베어져 죽거나 죽을 만큼 괴로움을 겪습니다. 마하나마여, 이것도 감각적 욕망이 원인·기원·소재이며 바로 그 때문에 생기는 현세의 괴로움 덩어리이자 위험입니다.
Puna caparaṁ, mahānāma, kāmahetu kāmanidānaṁ kāmādhikaraṇaṁ kāmānameva hetu asicammaṁ gahetvā, dhanukalāpaṁ sannayhitvā, ubhatobyūḷhaṁ saṅgāmaṁ pakkhandanti usūsupi khippamānesu, sattīsupi khippamānāsu, asīsupi vijjotalantesu. Te tattha usūhipi vijjhanti, sattiyāpi vijjhanti, asināpi sīsaṁ chindanti. Te tattha maraṇampi nigacchanti, maraṇamattampi dukkhaṁ. Ayampi, mahānāma, kāmānaṁ ādīnavo sandiṭṭhiko dukkhakkhandho kāmahetu kāmanidānaṁ kāmādhikaraṇaṁ kāmānameva hetu.
맛지마 니까야 MN 14 소고행집경 (Cūḷadukkhakkhandhasutta)배경
사람 사이의 다툼이 조직된 전쟁으로 확대됩니다. 경문은 칼과 방패를 들고 활과 화살을 맨 이들이 양쪽으로 나뉘어 전장에 뛰어드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화살과 창이 날고 칼이 번쩍이는 곳에서, 전투자들은 화살과 창에 찔리거나 칼에 머리가 베어져 죽음 또는 죽음에 이를 고통을 겪습니다. 이 폭력은 경문에서 전쟁 기술의 모범이 아니라, 감각적 쾌락을 둘러싼 위험이 최대한 커진 현세의 괴로움으로 제시됩니다.
묵상
전쟁의 장면을 영웅적인 이야기로 읽을 때와, 소유와 쾌락을 위한 대립이 조직화되어 몸과 생명이 치르는 대가로 읽을 때 어떤 차이가 생기나요? 추상적 목표 뒤에 있는 화살·창·칼과 죽음을 끝까지 함께 본다면, 그 목표에 대한 판단은 어떻게 달라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