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나마여, 어느 때 나는 라자가하 영취산에 머물렀습니다. 그때 여러 니간타 수행자가 이시길리 비탈의 검은 바위에서 의자를 거부하고 계속 서서, 애써 만든 아프고 날카롭고 심하며 격렬한 느낌을 겪고 있었습니다.”
Ekamidāhaṁ, mahānāma, samayaṁ rājagahe viharāmi gijjhakūṭe pabbate. Tena kho pana samayena sambahulā nigaṇṭhā isigilipasse kāḷasilāyaṁ ubbhaṭṭhakā honti āsanapaṭikkhittā, opakkamikā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ayanti.
맛지마 니까야 MN 14 소고행집경 (Cūḷadukkhakkhandhasutta)배경
설법의 바깥 화자는 여전히 마하나마에게 말하는 세존입니다. 다만 세존은 이제 라자가하 영취산에 머물던 과거를 일인칭으로 회상합니다. 검은 바위의 니간타 수행자들은 의자를 거부하고 계속 서서, 애써 만든 아프고 날카롭고 심하며 격렬한 느낌을 겪고 있습니다. 경문은 그 광경을 먼저 독립된 장면으로 보여 줍니다. 이어지는 방문과 질문, 니간타들의 직접 답은 서로 떨어뜨리지 않고 다음 문답 단위에 함께 둡니다. 이 장면은 고행을 권하는 말이 아니라 그 근거를 검증할 배경입니다.
묵상
고통을 견디는 사실 자체가 그 행위의 올바름을 증명할까요? 이 장면을 고행의 모범이 아니라 스스로 가한 고통의 목적과 인과를 묻는 장면으로 읽으면 무엇이 달라지나요? 어떤 실천을 평가할 때 강도, 근거, 결과 중 어느 것을 가장 먼저 확인하고 싶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