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행으로 고통을 다 없앤다는 논리

나따뿟따가 과거 업의 소진에서 모든 고통의 소진으로 이어진다고 가르친 인과 연쇄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니간타들이여, 과거에 지은 나쁜 업을 이 가혹한 고행으로 없애십시오. 지금 몸·말·마음을 단속하면 미래의 나쁜 업을 짓지 않습니다. 과거 업을 고행으로 끝내고 새 업을 짓지 않으면 미래의 유입이 없습니다. 유입이 없으면 업이 소멸하고, 업이 소멸하면 괴로움이 소멸하며, 괴로움이 소멸하면 느낌이 소멸하고, 느낌이 소멸하면 모든 괴로움이 없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가르침을 좋아하고 받아들이며 만족합니다.”

So evamāha: “atthi kho vo, nigaṇṭhā, pubbe pāpakammaṁ kataṁ, taṁ imāya kaṭukāya dukkarakārikāya nijjīretha; yaṁ panettha etarahi kāyena saṁvutā vācāya saṁvutā manasā saṁvutā taṁ āyatiṁ pāpassa kammassa akaraṇaṁ; iti purāṇānaṁ kammānaṁ tapasā byantibhāvā, navānaṁ kammānaṁ akaraṇā, āyatiṁ anavassavo; āyatiṁ anavassavā kammakkhayo, kammakkhayā dukkhakkhayo, dukkhakkhayā vedanākkhayo, vedanākkhayā sabbaṁ dukkhaṁ nijjiṇṇaṁ bhavissatī”ti. Tañca panamhākaṁ ruccati ceva khamati ca, tena camha attamanā’ti.

맛지마 니까야 MN 14 소고행집경 (Cūḷadukkhakkhandhasutta)

배경

이 말은 세존의 가르침이 아니라 니간타 수행자들이 인용한 나따뿟따의 가르침입니다. 그 논리는 과거의 나쁜 업을 가혹한 고행으로 소진하고, 현재 몸·말·마음을 단속해 새 나쁜 업을 짓지 않으면, 미래의 유입이 없어진다고 전개됩니다. 이어 유입의 부재→업의 소멸→고통의 소멸→느낌의 소멸→모든 고통의 소진이라는 연쇄를 제시합니다. 니간타 수행자들은 이 주장을 좋아하고, 받아들이고, 만족한다고 답합니다. 이어질 문답은 이 각 연결의 지식 근거를 검증합니다.

묵상

이 대목을 고행을 하라는 권고로 읽을 수도 있고, 니간타들이 받아들인 주장을 이어질 문답에서 검증하려고 제시한 부분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두 읽기 중 뒤의 다섯 물음과 더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은 어느 쪽인가요? 각 인과 단계의 지식 근거는 확인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