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나마여, 나는 니간타들에게 물었습니다. ‘니간타 벗들이여, 그대들이 과거에 확실히 존재했고 존재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음을 압니까?’ ‘아닙니다, 벗이여.’ ‘니간타 벗들이여, 그대들이 과거에 확실히 나쁜 업을 지었음을 압니까?’ ‘아닙니다, 벗이여.’ ‘니간타 벗들이여, 그대들이 이런 또는 저런 유형의 나쁜 업을 지었음을 압니까?’ ‘아닙니다, 벗이여.’”
Evaṁ vutte, ahaṁ, mahānāma, te nigaṇṭhe etadavocaṁ: ‘kiṁ pana tumhe, āvuso nigaṇṭhā, jānātha—ahuvamheva mayaṁ pubbe na nāhuvamhā’ti? ‘No hidaṁ, āvuso’. ‘Kiṁ pana tumhe, āvuso nigaṇṭhā, jānātha—akaramheva mayaṁ pubbe pāpakammaṁ na nākaramhā’ti? ‘No hidaṁ, āvuso’. ‘Kiṁ pana tumhe, āvuso nigaṇṭhā, jānātha—evarūpaṁ vā evarūpaṁ vā pāpakammaṁ akaramhā’ti? ‘No hidaṁ, āvuso’.
맛지마 니까야 MN 14 소고행집경 (Cūḷadukkhakkhandhasutta)배경
세존은 마하나마에게 이 과거 문답을 일인칭으로 전합니다. 먼저 니간타 수행자들이 과거에 존재했는지, 둘째 과거에 나쁜 업을 지었는지, 셋째 그 업이 이런 유형인지 저런 유형인지 아는지 묻습니다. 각 물음은 ‘니간타 벗들이여’라는 호격을 갖고, 그들은 매번 ‘아닙니다, 벗이여’라고 답합니다. 모르는데도 믿음이 강하다는 일반적 비판이 아니라, 과거의 나쁜 업을 현재의 고행으로 소진한다는 핵심 전제를 그들이 스스로 알고 있는지 하나씩 확인하는 구조입니다.
묵상
어떤 실천이 과거의 특정 원인을 없앤다고 주장한다면, 그 과거 사실과 원인을 실제로 알고 있는지 먼저 물을 수 있을까요? 세 물음과 세 부정 답변을 통해 결론이 아니라 그 결론을 받치는 앎의 범위를 검증할 때, 처음 주장의 확실성은 어떻게 보이나요?